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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AS] 제주 전 남편 살해 피의자 체포 영상은 ‘알권리’일까요?

등록 2019-07-29 20:48수정 2019-08-01 14:21

전 남편 살해 고씨 체포 당시 동영상 공개
경찰 간부가 언론사 제공, 경찰은 진상파악 중
“공정하게 재판 받을 권리 침해” 주장 나와
최근 공개된 전 남편 살해 용의자 고아무개씨 체포 당시 영상.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최근 공개된 전 남편 살해 용의자 고아무개씨 체포 당시 영상.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엽기적인 방법으로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아무개(36)씨의 체포 당시 영상이 최근 언론에 공개돼 화제가 됐습니다. 많은 이들이 영상을 보며 다시 한번 분노했습니다만, 영상 공개가 합당한지를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습니다. 과연 이 사안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 영상은 고씨 수사를 총괄했던 박기남 전 제주동부경찰서장(현 제주경찰청 정보화장비담당관)이 제공했다고 합니다. 제주경찰청은 박 전 서장의 이러한 행위가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공보규칙)에 어긋나는지 살펴보고 있답니다. 공보규칙 제4조에는 ‘사건관계자의 명예, 사생활 등 인권을 보호하고 수사내용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사사건 등은 그 내용을 공표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공개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되어있습니다. 다만 예외가 있습니다. △범죄 재발방지 △오보 및 추측성 보도로 사건관계자의 권익이 침해될 경우 △신속한 범인 검거 목적일 때 △공공 안전에 대한 급박한 위협이나 대응조치가 필요할 때입니다. 종합해보면 ‘국민의 알권리’를 포함한 ‘공익’이 인정될 때 사건 관련 내용을 공개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셈입니다.

비슷한 논란은 강력범죄자 신상공개 때도 나옵니다. 수사기관의 신상공개는 ‘증거가 충분한 중대범죄의 경우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조치입니다. 유영철 사건(2004년), 강호순 사건(2009년) 등을 거치며 흉악범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결과 2010년 만들어진 조항입니다.

이런 공개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란 명분 아래 이뤄지고 있지만, 국민의 알권리란 다른 헌법적 권리(가치)와 충돌할 때가 많습니다. 매 사안마다 적용되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란 얘기죠. 박경신 고려대학교 교수(법학)는 “피의자의 인격권이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언론사가 직접 체포 장면을 찍어 공개하거나 개인이 그 장면을 공유해 위험을 피하는 등의 활동에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국가는 공권력을 독점하고 있고 재판에서 피의자의 상대편으로 나서는 주체다. (체포 영상 공개는) 피의자가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 고씨의 변호인들이 최근 고씨를 향한 여러 비난 때문에 사임하기도 했습니다. 국가는 좀더 엄격한 잣대로 공개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주문인 셈입니다.

경찰의 체포영상 공개가 단순히 규칙 위반을 넘어선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형사사건 변론 경험이 많은 양홍석 변호사도 “체포될 때 고씨의 반응이나 오가는 말은 실제 재판에서 고씨 주장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런데 그 내용을 그대로 공개한 것은 공보준칙 위반을 넘어서는 일”이라며 “경찰이 영상을 공개한 것은 이 사건의 피해자 가족 등이 각종 증거를 찾아 언론에 제보하고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고 노력한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언론에 대한 지적도 나옵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흉악범 신상 등에 대한 과도한 보도는 피의자 뿐만이 아니라 (잘못이 없는) 주변 가족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게 만드는 등의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사건이 기소된 이후에는 사법의 주체 중 하나(검찰)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한 뒤라는 측면에서 사건과 관련한 여러 보도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고씨의 뻔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어떤 공익적 목적이 있는 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권리와 권리의 충돌 만이 쟁점은 아닙니다. 주목도가 높은 강력범죄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이성호 행정관은 경찰에 전자우편을 보냅니다. “용산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경기서남부연쇄살인사건’(강호순 사건)의 수사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연쇄살인 사건 담당 형사 인터뷰와 증거물 사진 등 추가정보를 공개하라는 구체적인 지침도 있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에도 유병언 전 회장 일가에 수사와 보도가 집중되면서, 정부 책임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습니다.

‘버닝썬 사건’ 때도 경찰과 클럽의 유착 의혹을 제기한 김아무개씨를 체포하는 과정을 찍은 ‘바디캠’ 영상을 경찰이 언론에 공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김씨가 체포에 거칠게 항의하는 모습을 담고 있어, 당시 클럽과의 유착과 부실 수사 의혹을 받던 경찰이 불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목적이라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실 고씨 체포 영상도 고씨 남편 등이 초동수사 미흡 문제를 지적하고 나온 뒤에 공개됐고, 또 초동수사 문제보다 고씨의 뻔뻔함이 부각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알권리’ 뒤에 놓치는 여러 맥락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고씨 사건 기사 모니터를 해보면 보도가 과열된 건 사실이다. (‘알권리’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영화를 보듯이 관련 내용을 계속 하나하나 따라가며 스토리를 보도하는 것에 중독되어 있다는 생각이다”며 “고씨가 이미 ‘악녀’라고 이미 규정되어 있어 이런 보도들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문제의식을 안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계속되면 ‘악인이면 인권을 침해해도 된다’ 등으로 우리사회의 인권 기준점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김 처장은 또 “고씨 개인에 대한 보도보다 경찰의 초기 수사에 잘못된 점은 없는지 등을 짚는 (공익성이 뚜렷한) 보도가 더 많이 나올 때가 아닐까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범죄보도와 관련해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잘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국민의 알권리를 너무 제한하다 보면, 정작 필요하고 중요한 사실이 묻힐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정부도, 언론도 무엇을 알리고, 알려서는 안 되는지 긴장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언론은 여러 보도 이유와 명분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도가 이런 명분을 달성하기 위해 충분하고 적절한 수준이냐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번 보도의 경우 어떤 측면에서 우리가 사회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김서중 교수의 말입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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