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성 단심실’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심장장애 3급 판정을 받고, 심장병 후유증으로 왼쪽 몸이 마비돼 뇌병변 5급 투병 중인 6살 둘째 아들 하준이(맨 오른쪽)와 9살 큰아들, 3살짜리 쌍둥이를 키우는 다섯남매 어머니가 1살짜리 막내를 안고 쌍둥이들과 놀아주고 있다. 익산/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현관문을 열자 어린아이 세명이 깔깔거리며 안방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낯선 사람의 방문에도 경계하는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첫째인 김성준(가명·9)군이 뒤따라 나와 어린 동생들을 진정시켰다. 민율(가명·3)양과 아윤(가명·3)군 쌍둥이 남매가 순순히 첫째의 말을 따랐고, 방바닥을 기어서 형과 누나를 뒤쫓던 막내 은우(1)도 방글거리며 제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방 안쪽에서 한 아이가 다리를 절며 걸어 나왔다. 왼쪽 다리에는 보조기를 차고 있었다. 다섯남매 중 둘째, 하준(가명·6)군이었다.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어 형이나 동생들보다 활동성이 떨어지는 하준이는 엄마 박지현(가명·39)씨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일반 사람들의 심장에는 우심실과 좌심실이 있어 각각 폐순환과 전신순환을 맡아 혈액이 온몸을 골고루 순환하도록 하지만, 하준이는 심실이 하나뿐이다. 전신순환과 폐순환을 거친 혈액이 하나의 심실로 들어오는 만큼 심실이 늘어나고 판막이 역류하거나 여러 가지 합병증이 발생한다. ‘기능성 단심실’이라는 희귀병이다.
하준이는 태어난 다음 날부터 이상 증세를 드러냈다. 결핵예방(BCG) 주사를 맞을 때, 울음을 터트리는 하준이의 입술이 파래졌다. 심한 청색증이라고 했다. 아빠 김현수(가명·38)씨는 곧바로 산부인과를 나와 도내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지금 당장 더 큰 병원으로 가지 않으면 죽을 수 있어요.” 아빠는 또다시 응급차를 탄 채 전북 익산에서 경기 부천에 있는 심장전문병원으로 달려야 했다. 생후 이틀째인 하준이에게 세번째 병원이었다.
엄마 박씨도 하준이를 낳은 지 23시간 만에 의사 만류도 뿌리치고 익산의 산부인과를 퇴원해 부천의 심장전문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정작 하준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준이는 중환자실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고, 부모도 면회가 제한됐다. 박씨는 10시간 동안 꼬박 울었다고 했다. “눈이 멀도록 운다는 말을 그때 실감했어요.”
‘기능성 단심실’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심장장애 3급 판정을 받고, 심장병 후유증으로 왼쪽 몸이 마비돼 뇌병변 5급 투병 중인 6살 둘째 아들 하준이를 엄마 박씨가 쓰다듬고 있다. 익산/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다행히 하준이를 검사한 심장전문병원에서는 “해볼 만하다”고 했다. 박씨는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데려다준 기분이었다”고 했다. 다만 갓 태어난 하준이가 너무 작으니 조금 더 자라면 수술을 해보자고 했다. 식자재 업체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던 남편은 하준이를 보러 가기 위해 경기도 지역을 뛰는 운송직을 자처했다. 그때부터 박씨 부부는 매일 4시간 거리인 익산과 부천을 오갔다. 산후조리를 전혀 하지 못했던 박씨에게는 더욱 큰 고역이었다. “트럭이 흔들릴 때마다 등이 찢어지고 꼬리뼈가 무너져 내리는 듯했어요.”
하지만 그 몸으로 병원 면회시간을 맞추기 위해 남편을 도와 짐까지 날랐다. 그렇게 일이 끝나면 저녁 7시부터 30분간 하준이를 면회했다. 다시 익산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면 자정이 다 돼 있었다.
“어느날 몸이 너무 아파 남편을 따라가지 못하고 집에 머물렀던 적이 있어요. 면회시간인 저녁 7시가 되자 심장이 조이듯이 아파왔어요. 면회 가서 ‘하준아’ 하고 부르면 눈을 감고 있다가 반짝 뜨던 아기였는데, 오늘은 왜 엄마가 안 왔냐고 찾을까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 온몸에 파스를 붙이면서도 빠지지 않고 하준이 면회를 갔어요.”
남들에게는 잔칫날인 100일과 돌에 하준이는 수술을 받았다. 첫번째 수술에 7시간, 두번째 수술에는 9시간이 걸렸다. “심장 자체를 새로 만드는 과정”(엄마 박씨)이었다. 우선 심실을 대동맥과 연결해 몸 전체에 혈액을 보내는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주고, 그다음 온몸을 돌고 온 혈액이 심장을 거치지 않고 폐로 가도록 폐동맥과 연결해준다. 폐순환과 전신순환을 분리한 뒤 폐순환이 심실을 우회하도록 하는 ‘폰탄 수술’ 과정이다.
다행히 하준이는 두번의 수술 모두 잘 견뎠다. 이제 하준이가 받아야 할 수술은 한차례만 남았다. 문제는 돈이다. 두번 수술을 받느라 3000만원이 들었다. 평생 약도 먹어야 한다. 다행히 수술비 중 500만원은 심장재단에서 지원을 받았다. 하준이를 낳기 전까지 박씨 부부가 한달에 3만원씩 꾸준히 후원하던 곳이다. 그래도 아픈 아이를 돌보며 남은 2500만원을 갚아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박씨는 쌍둥이를 가지게 됐다.
박씨는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쌍둥이인데도 배가 별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박씨는 “엄마의 상황이 힘들면 아기도 작게 자란다”고 설명했다. “애가 아픈데 무슨 애를 또 낳느냐”며 모진 말을 해대는 사람도 있었다. 박씨는 최대한 임신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그렇게 조용히 태어난 쌍둥이는 자라는 내내 수월했다고 한다.
“아이를 많이 낳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 때마다 ‘기쁨이 그 몇배’라고 이야기하는데, 처음에는 웃긴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낳고 보니 정말 한명 한명이 주는 기쁨이 다 다르더라고요. 그게 위안이 많이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나와 함께 있어서 웃는데, 내가 그걸 부담으로 여기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막내까지 태어나면서, 박씨는 다섯남매의 엄마가 됐다.
뇌병변장애로 왼쪽 다리가 짧아 땅을 제대로 딛지 못하는 하준이는 항상 보조기를 차고 있어야 한다. 하준이의 발목에는 보조기로 생긴 흉터가 있다. 이주빈 기자
그 사이 하준이는 장애판정을 더 받았다. 쌍둥이가 태어난 다음 해인 2017년 어느 날이었다. 부엉이 모양 후드티를 입고 잔디를 걷는 하준이의 왼쪽 팔이 어딘가 어색했다. 박씨는 순간 놀라 유치원에서 하준이 사진으로 만들어준 달력을 한장씩 넘기며 살펴봤다. 1월, 2월, 3월…. 매달 담긴 하준이 사진 속 왼팔은 하나같이 굳어 있는 모습이었다. “병원에서 뇌병변장애 판정을 받았어요. 이미 발병 3년이 지난 상태였다고 해요. 병원에서도 더 일찍 재활을 시작했다면 예후가 좋았을 텐데 늦어서 아쉬워했습니다. 심장병에만 신경 쓰느라 뇌병변을 미리 눈치채지 못했던 거예요.”
하준이는 6개월에 한번씩 약을 받으러 심장전문병원에 가고, 일주일에 네번씩 왼쪽 몸의 근육을 풀기 위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6개월에 한번씩 근육 경직을 막는 150만원짜리 보톡스 주사도 맞아야 한다. 남편의 외벌이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회사 일이 끝나자마자 친구의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남편은, 다시 3교대 생산직으로 전환을 자처했다. 월급이 몇십만원 늘었다. 그렇게 받는 한달 수입이 280만원인데, 매달 집 대출금 35만원, 하준이 심장치료비 대출금 100만원을 빼면 145만원 정도가 남는다. 큰 시술이나 수술이 없다면 하준이에게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치료비가 매달 80만원이다. 남는 돈은 65만원. 그나마 가뭄에 단비 같은 아동수당이 있어, 박씨가 한달 생계를 꾸릴 수 있는 비용이 120만원 정도가 됐다.
쌍둥이를 낳은 2016년부터 박씨는 ‘차상위 본인 부담 경감 대상자’가 돼 아이들의 의료비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하준이를 익산에서 부천의 병원까지 데려가기 위해 중고 카니발 차량을 사자 대상자에서 탈락했다. “하준이 이름으로 장애인 등록까지 했는데도 개량이 안 돼 있다는 이유로 2000㏄가 넘어 (경감 대상자) 조건에서 탈락했어요. 인권위가 익산시청에 다시 심의하라고 권고했는데도, 익산시에서는 ‘법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 이 가정에 해주면 다른 집들도 다 해줘야 한다’며 심의를 다시 해주지 않았어요.”
그렇게 박씨는 중복장애(심장장애 3급, 뇌병변장애 5급) 아들 하준이를 포함해 아이 다섯과 “그달 벌어 그달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다. 반드시 해야 하는 하준이 세번째 심장 수술은 어떻게 치러야 할지 막막하고, 하준이가 그토록 바라는 다리 수술은 꿈도 못 꾸고 있다. 중복장애 아동 하준이의 꿈은, 짧아진 왼쪽 다리의 아킬레스건을 늘리는 수술을 받고 심장이 튼튼해져 성준이 형처럼 뛰어다니는 것이다.
박씨가 바라는 꿈도 “아이들 데리고 워터파크에 가는 것”으로 소박했다. 하지만 그 꿈에도 사연이 있었다. “어느 날 하준이가 유치원에서 물놀이를 갔다가 거머리에 스친 적이 있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상처가 났는데 피가 온종일 멈추지 않았어요.” 심장병 때문에 피를 묽게 만드는 약을 평생 먹어야 하는데, 그래서 ‘거머리 없는’ 워터파크에 가서 놀게 하고픈 마음이 들더란 것이다.
‘기능성 단심실’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심장장애 3급 판정을 받고, 심장병 후유증으로 왼쪽 몸이 마비돼 뇌병변 5급 투병 중인 6살 둘째 아들이 있는 5남매 집안의 현관에 아이들의 신발이 놓여 있다. 익산/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박씨는 한 복지사가 건넨 한마디가 가슴에 와닿았다고도 했다.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누구나 다 그렇게 될 수 있어요”라는 말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후원할 정도로 살았는데, 지금 이렇게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해질 줄 누가 알았을까요. 이번 기회에 느낀 게, 어떻게 보면 너무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매우 많은데, 저희처럼 차상위 계층도 아니고 어떻게 해서든 살아보려는 가정은 갑자기 위기가 닥쳤을 때 받을 수 있는 지원이 별로 없더라고요.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되면, 다시 저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어요.”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참여하려면
하준이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기업은행 148013356-01-136 예금주: 대한적십자사)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대한적십자사(1577-8179)로 문의해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대한적십자사로 연락해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10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하준이네 가족의 생계비와 교육비로 사용되고, 1000만원 이상 모금되면 하준이네 가족처럼 어려운 가정에 지원됩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준수(가명)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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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