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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성락원’ 소유자 근거없는 주장이 문화재 지정 `핵심 근거’

등록 2019-07-30 17:02수정 2019-07-31 05:48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
원래는 1983년 계간지에 실린 내용
글쓴이 “성락원 소유자한테 들었다”

ㄱ교수, 2006년 연구서 그대로 인용
문화재청, 이 연구 근거로 명승 지정
“문화재 지정 과정 전면 조사 중”
서울 성북구 성락원의 연못 ‘영벽지’ 주변을 관람객들이 걷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 성북구 성락원의 연못 ‘영벽지’ 주변을 관람객들이 걷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조선시대 전통정원이라고 홍보하며 56억원을 들여 복원사업을 해온 서울 성북구 성락원에 대한 연구용역이 엉터리로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은 역사적 검증도 하지 않고 한 대학원 졸업생이 잡지에 쓴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라는 내용을 핵심 근거로 성락원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30일 상명대 ㄱ교수가 2006년 작성한 성락원에 대한 문화재청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성락원은 조선 순조 때 황지사의 별장으로 조성된 것이나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라고 돼 있다. ‘성락원이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다’는 점은 1992년 ‘문화재로서 가치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도 문화재청이 당시 성락원을 사적으로 지정한 핵심 근거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조판서 심상응’이 존재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현재 어디에도 없는 상황이다.

이 대목은 ㄱ교수가 1992년 7월에 쓴 박사학위 논문인 ‘조선시대 별서정원에 관한 연구’에 그대로 나온다. 그는 이 논문에서 성락원에 대해 “순조 때 황지사의 별장이었으나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고 썼다.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담은 자신의 논문을 문화재청 연구용역 보고서에 재탕한 것이다.

문제는 이 대목이 1983년 <환경과 조경>이라는 계간지에 그대로 실렸던 내용이라는 점이다. ‘선인들의 은일사상이 깔린 별서정원’이란 제목의 글은 성락원에 대해 “순조 때 황지사의 별장으로 조성되었다.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ㄱ교수는 이 내용을 자신의 논문과 연구보고서에 가져다 썼다.

이는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니다. 글은 박문호 전 서울시립대 교수가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할 당시 쓴 것이다. 그는 최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당시 성락원 소유자였던 심상준 제남기업 회장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 그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심상준 회장의 말이지, 역사적으로 확인한 내용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서울 성북구 성락원의 모습. 박종식 기자
서울 성북구 성락원의 모습. 박종식 기자
그런데도 문화재청은 1992년 3월 ‘성락원이 문화재로서 가치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정조사 보고서를 받고도 ㄱ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이 나오고 한달 지난 같은 해 8월 성락원을 조사한 뒤, 그해 12월 사적으로 지정했다. 또한 문화재청은 ㄱ교수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제출받고 2년 뒤인 2008년 성락원을 명승으로 재지정했다. 박문호 전 교수는 “내가 1983년 잡지사에 기고한 글을 토대로 문화재청이 성락원을 문화재로 지정했다고 들었다”며 “‘이조판서 심상응’에 대한 근거가 내가 쓴 글이라니 기가 막히다”고 말했다.

ㄱ교수의 제자 이아무개씨의 증언도 ㄱ교수의 평소 연구용역이 허술하게 이뤄져왔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이씨는 성락원 연구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2008년부터 2014년까지 ㄱ교수의 연구소에서 일하며 ‘명승 우수 자원 지정 정밀조사’ 등 ㄱ교수가 수행한 문화재청의 연구용역을 도왔다. 이씨는 최근 <한겨레>와 만나 “ㄱ교수와 문화재청 연구용역을 수행하며 국사편찬위원회를 찾아가는 등 역사검증을 하라는 지시를 받아본 적이 없다”며 “인터넷에서 관련 내용을 검색하거나 논문, 지방정부 자료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가 발생한 원인으로 문화재 지정 과정의 폐쇄성을 꼽았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문화재 지정을 검증 안 된 몇몇 이들에게 맡기다 보니, 유령인물이 역사적인 인물로 둔갑했다”며 “성락원 논란을 보면서 문화재청은 검증할 생각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락원은 ‘사실상 만들어진 전통’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은 “성락원에 대한 연구용역 입찰 과정이 적절하게 지정됐는지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며 “문화재청은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문화재에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것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ㄱ교수는 문화재청 연구용역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인건비와 출장비를 빼돌린 혐의로 2015년 경찰 수사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ㄱ교수 주변 인물들은 그가 이 사건 뒤 중국으로 출국했다고 입을 모은다. ㄱ교수의 해명을 들으려 이메일, 트위터 등으로 연락을 했으나 답변이 없었고, 그의 부인에게도 여러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성락원이 어떻게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는지 전면 조사 중”이라며 “1990년도만 해도 문화재 지정에 소유자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 앞으로 명승을 지정할 때 좀 더 확실한 문헌을 확인하는 등 관련 고증을 거치도록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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