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최근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김앤장)를 두차례 압수수색한 것을 계기로 변호사 업계가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유지권’ 도입 추진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비밀유지권 강화를 빌미로 법무법인이 의뢰인의 위법 행위에 관여하거나 범행을 은폐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이달 초 비밀유지권 침해 실태조사를 발표하고, 엿새 뒤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를 여는 등 비밀유지권 강화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 4일 공개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에 응한 변호사 238명은 검찰(37.7%)과 경찰(18.9%) 등을 비밀유지권 침해 기관으로 꼽으며 “(검경이) 의뢰인과의 카카오톡 대화내역, 상담일지, 변호인 의견서 등을 증거로 수집해 갔다”고 밝혔다.
변협은 지난 10일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법무부, 법원행정처 관계자 등이 참석하는 ‘변호사 비밀유지권 도입’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변협 관계자는 “실태조사 결과,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이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별건 수사로 번지는 ‘마구잡이 압수수색’을 막기 위해 비밀유지권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비밀유지권 도입을 명문화한 변호사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나경원·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은 각각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리에 이뤄진 의사 교환 내용, 법률 자문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거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변호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변협은 직무상 취득한 비밀 정보는 원칙적으로 비공개하고 그 보호 대상을 구체화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을 구상 중이다. 이를 위반한 증거는 재판에서 쓸 수 없게 하는 내용도 담겼다.
비밀유지권은 헌법(12조 4항)이 보장한 ‘변호인 조력권’ 등을 위해 필요하지만, 법무법인이나 피의자의 탈·불법 행위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쓰이지 않도록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최근 대형 로펌들은 사법농단 사건 등에서 불·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논란을 자초했다. 사법부와 행정부가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지연하려 했다는 의혹에 일본 기업을 대리한 한상호 김앤장 변호사가 연루된 정황이 지난해 11월 포착됐고,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을 내준 게 대표적이다. 지난 2월에는 김앤장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 애경산업의 내부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돼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앞서 2016년에는 롯데그룹 탈세 의혹과 관련해 법무법인 율촌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해당 법인 쪽에서는 “클라이언트(고객)들이 ‘상담, 의뢰한 내용이 검찰에 흘러갈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돼 로펌들로서는 타격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불법의 경계선을 넘은 법률사무소까지 비밀유지권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만큼 실효적인 제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사법농단 재판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쪽이 ‘비밀유지권’을 주요 방어 논리로 쓰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쪽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증거가 ‘위법수집 증거’라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앤장이 대리하는 일본 기업들로부터 업무상 위탁을 받아 가지고 있던 자료인 만큼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부는 지난 17일 김앤장에 대한 압수수색은 적법했다고 판단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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