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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강남·서초구 전철역 3개 이상인 동 65%…“교통이 기회이자 권력”

등록 2019-08-03 09:10수정 2019-08-05 09:34

[토요판] 커버스토리
서울의 교통 격차

서울시내 424개 행정동 가운데
‘도보 10분 내 전철역 없는 동’ 170개
‘전철역 하나도 없는 동’도 113개

역 3개 이상 놓인 동은 103개
서초구 67%, 강남구 64%가 해당
“서울 교통인프라 강남권에 집중돼”

수익성·효율성 위주로 대중교통 공급
불평등 심화…“형평성도 고려해야”
“교통은 일자리, 서비스 접근에 중요”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역 출입구와 강북 한 동네의 오르막길에서 마을버스가 운행되는 모습.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역 출입구와 강북 한 동네의 오르막길에서 마을버스가 운행되는 모습.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역세권’이라는 단어가 있다. 지하철에서 걸어서 5~10분 안팎인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역세권은 삶의 질은 물론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흔히 “강남은 온 동네가 역세권”이라고 말한다. 반면 지하철역이 하나도 없는 동도 서울 전체 행정동의 27%에 이른다. 지하철역은커녕 마을버스 이용조차 쉽지 않은 지역도 있다. 서울의 교통불평등 실태를 들여다봤다.

1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였던 지난 7월23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2동 백련산 중턱에 자리한 산비탈 마을에 뙤약볕이 내리쬐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습기가 마을 전체를 집어삼킬 듯했다.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빨간 벽돌 빌라 사이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돌계단이 수십개 이어졌다. 낡은 간판의 구멍가게 앞에선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주민이 손으로 모자챙을 만들어 따가운 볕을 피했다.

이 동네에 사는 회사원 김재원(33·가명)씨는 출퇴근길이 고난의 길이다. 장맛비와 무더위가 엇갈렸던 최근에는 더 심했다. 집을 나선 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질 때면 바지가 산에서 내려온 빗물로 온통 젖었다. 퇴근해 산 중턱에 있는 집에 가려면 큰길의 파란색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급경사 오르막길을 20여분 올라가야 한다. 땀이 줄줄 흘러내리면서 사우나 안에서 운동을 하는 기분이다.

6개월 전 김씨가 이 동네로 이사를 온 것은 신선한 공기와 탁 트인 전망, 저렴한 전세금 때문이었다. 다른 동네에서 원룸을 구할 금액으로 이 동네에선 방 두개짜리 빌라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택의 대가는 혹독했다. 그는 “마을버스를 안 타면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25분가량 걸린다. 시내버스가 다니는 큰 도로까지 나가는 데도 15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는 아예 걷기가 힘들다”며 “산 중턱까지 올라올 배달원에게 미안해 웬만하면 택배나 배달음식을 주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동네에는 체력이 부족한 노인들이 많이 산다. 마을버스 정류장 근처 골목길에는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 동네에서 5년을 살았다는 주민 이아무개(76)씨는 “특히 겨울이 되면 빙판 때문에 거의 밖에 나갈 수 없어 집에서만 지낸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동네에서 대로변과 지하철역에 나갈 수 있도록 ‘실핏줄’ 노릇을 하는 마을버스 서대문14번이 운행되고 있는 점이다. 비탈길이 좁아 25인승 마을버스는 못 다니고 15인승 미니버스가 8분 간격으로 다닌다. 이 버스를 운영하는 정장필 정원마을버스 대표는 “마을버스 한 대당 이용객이 하루 천명은 넘어야 수익이 나는데, 이 노선 이용객은 하루 900여명에 그쳐 수익을 내기 빠듯하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구에는 지하철역 바로 인근에 형성된 아파트 단지도 있고 고급 단독주택 밀집 지역도 있지만, 홍은2동처럼 산비탈에 형성된 오래된 주택가나 수십년간 개발이 비껴간 서울의 대표 ‘산동네’ 개미마을 등도 공존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개미마을에 마을버스가 올라가고 있다. 사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개미마을에 마을버스가 올라가고 있다. 사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수도권에 시간당 70㎜의 장대비가 쏟아진 7월31일 출근시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오래된 주택가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동네 주민들의 출근길은 번잡했다. 이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은 동대문역인데,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전철역까지 가는 마을버스도 비 때문인지 제때 오지 않았다. 이 동네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주민 최아무개(60)씨는 “지하철역뿐 아니라 파란색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나가는 길도 30분 정도는 걸어야 한다”며 “근처에 대중교통이라곤 마을버스밖에 없는데, 마을버스도 빙빙 돌아가니까 어쩔 땐 걷는 게 빠르다”고 말했다. 이 동네는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네 가족이 폭우 속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일부 촬영한 장소이기도 하다.

지하철역 빈익빈 부익부

서울은 우리나라에서 대중교통 체계가 가장 발달한 도시다. 세계적으로 비슷한 규모의 대도시와 비교했을 때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하지만 도시 규모가 큰데다 오랫동안 대중교통 서비스 공급이 효율성을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는 교통취약지역이 곳곳에 존재한다. 반면 강남처럼 “온 동네가 역세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촘촘한 대중교통 서비스를 누리는 지역도 있다. <한겨레>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홍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을 통해 서울시 도시교통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도보 10분 내 도시철도(지하철·국철·경전철, 이하 ‘전철’로 통칭)역 접근이 어려운 동 목록’에는 서울 전체 행정동 424개 가운데 170개(40%)가 포함된다. 역이 하나도 없는 동은 113개(27%)에 이른다. 이런 동들이 집중된 지역은 서울 서북권(은평구·서대문구), 동북권1(도봉구·노원구), 동북권2(중랑구·성북구·강북구), 서남권1(금천구·관악구·구로구), 서남권2(강서구·양천구)의 일부 지역이다. 지리적으로 산간 지형이 발달해 대중교통이 놓이기 어렵거나, 고도 경제개발 시기에 도시계획상 교통인프라 투자에서 소외된 곳들이다.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반면 1970년대부터 정부에서 계획적으로 집중 개발한 강남권에는 전철역이 몰려 있다. ‘도시철도역 3개 이상 있는 동 목록’을 보면, 서울 424개 동 중 전철역이 3개 이상 있는 동은 103개(24%)였다. 특히 강남구와 서초구에 이런 동이 많았다. 서초구는 전체 18개 가운데 12개 동(67%)에, 강남구는 전체 22개 가운데 14개 동(64%)에 역이 3개 이상 있었다. 반면 양천구에는 역이 3개 이상인 동이 한 곳도 없었고, 관악구에는 21개 중 1개 동(5%)만이 이에 해당했다. 장훈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전문위원은 “역이 3개 있는 동이 강남구와 서초구에 많다는 것은 서울의 교통인프라가 강남권에 집중돼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전철역 총 개수를 따져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국회 교육위원회 이학재 의원(자유한국당)이 지난해 10월 낸 ‘서울 자치구별 전철역 현황’ 자료를 보면, 자치구 25곳 가운데 강남구에 가장 많은 역(28개)이 있었다. 전철역 보유 현황으로 자치구 순위를 매겼을 때 송파구 20개, 서초구 18개 등 강남 3구가 5위 안에 들었다. 노선 개수로 봐도 격차는 뚜렷하다. 서울 전체 전철노선 16개 중 강남구와 서초구, 종로구, 중구에 6개씩 지나는 반면, 강북구, 은평구, 관악구, 금천구, 강동구는 2개씩 지난다.

동네에 전철역이 없거나 적더라도 버스노선이 잘 발달돼 있으면 어느 정도는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버스노선으로 전철역이 몰려 있는 지역의 교통인프라를 따라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서울시의 교통수단분담률(시민들이 하루 중 이용하는 교통수단 비율, 2017년 기준)을 보면, 전철(지하철 등 도시철도 전체) 39.9%, 버스 25.1%, 승용차 24.4%, 택시 6.5%, 기타 4.1%다. 전철은 이용자 규모가 가장 크고 정시에 도착하기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큰 교통수단으로 여겨진다. 윤혁렬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철역의 유무가 해당 지역의 땅값, 주택가격, 생활 편의성을 판단하는 대표 지표 중 하나”라며 “주변 지역 파급력 등을 고려할 때 가장 영향력이 큰 교통인프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철을 보완해야 할 버스 역시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전철역이 없더라도 버스전용차로, 특히 차선의 중앙차로 하나를 버스만 다니도록 해 주요 도심까지 빠르게 연결하는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조성돼 있으면 이동성이 좋아진다. 중앙버스전용차로는 서울에 현재 43개 구간(125.8㎞)에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 차로도 도로 상황에 따라 많이 조성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으로 나뉜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버스노선에도 지역간 불균형이 존재한다. 강북지역은 도로가 좁고 구불구불하며 차선이 적기 때문에 버스전용차로를 충분히 조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 5호선, 6호선, 경의중앙선, 공항철도 등 지하철(도시철도 통칭) 노선이 4개가 지나가는 서울 마포구 공덕역의 모습. 공덕역에 지하철 노선이 점점 늘어나며 최근 ‘마용성’(마포구·용산구·성동구)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근처 집값이 올랐다. 사진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지하철 5호선, 6호선, 경의중앙선, 공항철도 등 지하철(도시철도 통칭) 노선이 4개가 지나가는 서울 마포구 공덕역의 모습. 공덕역에 지하철 노선이 점점 늘어나며 최근 ‘마용성’(마포구·용산구·성동구)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근처 집값이 올랐다. 사진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부동산 가격 좌우하는 교통인프라

같은 서울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크게 달라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대중교통 인프라 차이가 지적되기도 한다. ‘서울시 강남지역과 강북지역간 지가 격차에 관한 연구’(<감정평가연구> 수록, 2008)는 “강남과 강북의 지가 격차는 대부분 교통여건의 차이”라며 “강북의 지하철역 수는 강남 3구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 또한 주요 도심으로 가는 도로 역시 상습정체구간이며 도로망 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다”고 설명한다. 이 연구를 보면 강북 3구(노원구·도봉구·강북구)에서 도로를 통해 차량 접근이 불가능한 필지가 17.6%인 반면, 강남 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는 1%밖에 되지 않는다. 논문의 저자인 허식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와 이성원 한국부동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논문에서 “강남과 강북의 개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도시철도역이 강북 곳곳을 지날 수 있도록 강남 수준으로 확충하고 강북의 도시고속도로를 충분한 규모로 건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시는 이런 대중교통 인프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2008년 ‘도시철도 10개년 1차 도시철도기본계획’과 2013년 이를 보강한 ‘도시철도 종합발전방안’을 내놓고 신림선, 동북선, 서부선, 난곡선, 면목선, 목동선, 우이신설선 등 10개 노선을 더 만들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 계획된 노선 중 우이신설선만 완공됐을 뿐이다. 나머지는 수익성이 낮은 이른바 ‘적자 노선’이라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서부선, 신림선, 동북선 등은 민간투자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난곡선, 면목선, 목동선, 우이신설연장선 등은 민간투자가 어려워 정부 사업으로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지난 2월20일 ‘제2차 서울시 10개년 도시철도망구축계획’을 다시 내놨다. 양천구 목동부터 동대문구 청량리까지 강북의 동서를 잇는 강북횡단선을 새로 놓고, 5개 노선(서부선, 목동선, 난곡선, 면목선, 우이신설연장선)을 완공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총 사업비 7조2302억원 가운데 국비가 2조3900억원, 시비가 3조9436억원 들어가야 해 일각에서는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노선에 세금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안으로 계획안에 대한 국토교통부 승인을 받겠다는 목표다. 시는 시민펀드를 통해 재정을 마련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동권은 기본권의 하나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우리나라 대중교통 시설은 효율성과 수익성의 가치에 중점을 두고 확장돼왔다. 이용객이 많은 고용 중심지나 인구 밀집지에 교통이 집중됐다. 지하철이 놓일 때도 얼마나 수익을 낼 수 있는 노선이냐가 관건이 됐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교통이 좋은 지역 위주로 주변 편의시설이 형성되고 집값도 상승했다. 교통이 좋은 지역은 ‘살기 좋은 곳’으로 계속 발전하는 반면, 교통이 안 좋은 지역은 점점 더 살기 힘든 곳으로 낙후됐다.

하지만 점차 교통인프라의 공급 기준을 형평성으로 옮기고, 이동권을 기본권의 하나로 봐야 한다는 논의가 커지고 있다. 어디에 살든 모든 시민이 자신의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이동권이라는 기본적 권리를 국가로부터 보장받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교통은 일자리는 물론 사회·경제·문화적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교통취약지역에 사는 경우 고용, 교육, 건강, 여가, 사회연결망 등 여러 기회에서 멀어지면서 그 지역 주민이 더욱 고립되고 복합적인 소외에 이르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2010년 국토교통부가 시민의 기본권의 하나로 국가가 이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교통기본법’ 제정을 입법예고한 적이 있다. 현대인의 기본권으로서 교통권을 명시하고 각 지자체의 최저교통서비스 기준 미달 지역의 상황을 개선하는 내용을 담아 국회에 제출했지만 입법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한대호 건국대 초빙교수(지리학)는 ‘서울의 대중교통 접근성과 형평성 분석’(2016) 논문에서 “이제 기회의 형평성 측면에서 대중교통의 불평등 문제를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저교통서비스의 기준을 대도시에도 마련하고, 정부가 교통정책을 수립하거나 대중교통 사업을 계획할 경우 타당성 조사와 함께 형평성도 함께 고려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시학 경희대 교수(지리학)는 “잘 놓인 교통인프라로 인해 발생하는 직간접적인 이익이 시민 전체에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교통으로 인한 사회적 영향력은 간과한 채 수익성과 효율성만 따지다 보니 현재 우리의 교통체계는 많은 차별과 배제를 만들어내는 형국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교통으로 인한 사회적 배제가 앞으로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될 수 있다”며 “교통이 좋은 지역에 사는 것은 고용, 교육, 여가, 각종 서비스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는 사회적 기회와 직결되기 때문에 이를 더 많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 일종의 권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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