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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전국 아동대표 ‘제대로 성교육’ 건의에 정부는 무성의 답변

등록 2019-08-08 14:56수정 2019-08-15 08:56

아동총회로 본 ‘아동 참여권’ 현실

지난해 아동대표 토론 거쳐 12개 정책 제안
정부 답변 구체성 떨어지고 현행 제도 설명만

어린이·청소년 의회 설치 지자체 증가 추세
‘능동적 주체’ 인식 낮고 일회성 행사 많아
학교 안팎 일상서부터 참여권 실질 보장 필요
아동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해답을 아동에게 들어보는 대한민국 아동총회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진행됐다. 올해는 ‘아동의 의견을 존중하는 정책’을 주제로 토론한 뒤 정책 제안을 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제공
아동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해답을 아동에게 들어보는 대한민국 아동총회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진행됐다. 올해는 ‘아동의 의견을 존중하는 정책’을 주제로 토론한 뒤 정책 제안을 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제공

“지난해 11번 결의문(5살부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세요)을 작성한 이유는, 현재 성교육이 우리가 진짜 알고 싶어하는 적합한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는 의견 때문이었는데요. 정부 추진 현황을 보면 기존 성교육 표준안을 언급했는데, 관행대로 성교육을 실시하는 건 개선이 필요하지 않나 싶은데요.” (아동총회 참여 아동)

“중앙부처 차원에서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 거 같은데, 답변이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

지난 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제16회 대한민국 아동총회 개회식에 참여한 전국 만10~17살 대표들은 지난해 아동들이 채택한 정책 결의문에 대한 정부 답변을 받아본 뒤 궁금한 점이 많아 보였다. 아동총회는 지난 2002년 유엔아동특별총회에 민간 대표단으로 참석하고 돌아온 아동들의 요청과 2003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가정·학교·사회에서 아동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한 조치가 불충분하다’는 권고에 따라 2004년부터 해마다 복지부 주최로 열리고 있다. 전국 아동들이 한자리에 모여 직접 선정한 주제에 대해 2박 3일 토론을 한 뒤 정책 제안 결의문을 채택해 정부에 전달한다.

8일 <한겨레>가 아동대표들에게 배포된 ‘제15회 대한민국 아동총회 결의문 추진 현황’을 살펴보니, 12개 결의문에 대한 정부 답변은 대체로 이해하기 어렵고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했다. 제안 취지에 어긋나거나 무성의한 답변도 눈에 띄었다. 예를 들어, 실질적 성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교육부는 “유치원 성교육 표준안(2015년 3월), 3~5살 연령별 누리과정, 유치원 성교육 프로그램(2016년 11월) 등을 활용,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2015년 2월)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성교육 운영”이라고만 답했다. 더구나 2015년에 마련한 ‘유·초·중·고 성교육 표준안’의 경우, 이미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시대착오적이며 편향적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학교에서 일기·소지품 검사 등 사생활 침해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달라는 의견엔 “소지품 검사, 명찰 부착 여부는 학생·학부모·교사 등 구성원 의견 수렴 및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학교장이 결정”한다는 현실을 알려줄 뿐이다.

이러한 정부 태도는 유엔아동권리협약상 아동의 기본적 권리인 ‘참여권’이 공허한 메아리로 머물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다.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일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존중받을 권리, 표현의 자유·양심과 종교의 자유·평화로운 방법으로 모임을 자유롭게 열 수 있는 권리,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 등이 참여권에 포함된다.

2017년 전국 370여개 교육·청소년·인권단체가 모여 출범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만든 카드뉴스 중 한 장면. 홈페이지 갈무리
2017년 전국 370여개 교육·청소년·인권단체가 모여 출범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만든 카드뉴스 중 한 장면. 홈페이지 갈무리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만 18살 미만 아동을 ‘자신과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견해를 형성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로 보는 인식이 부족하며, 관련 정책도 미흡한 상황이다. 청소년기본법이 보장하는 청소년특별회의·청소년참여위원회 같은 참여기구는 인지도가 낮다. 학교 예산배분·학칙 제정 등에 관여하는 운영 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원·학부모·지역 위원으로 구성하게 돼 있고, 학생 참여는 규정돼 있지 않다. 현재 복지부 소관 아동복지법상 아동은 18살 미만이며, 여성가족부 소관인 청소년기본법상 청소년은 9살 이상 24살 이하이다. 학교 관련 사안은 교육부가 담당한다.

전문가들은 학대 피해를 비롯해 아동들이 겪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당사자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야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될 수 있다고 짚는다. 또 자신의 삶과 관련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해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지켜보는 경험은 곧 민주 시민이 자라나는 토양이다.

이선영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서울아동옹호센터팀장은 “최근 지자체들이 (조례 제정을 통해) 아동·청소년 의회를 설치하거나, 여러 주제에 대해 의견을 청취하는 사업이 늘고 있지만 아동들이 말하는 걸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못하다. 또, 열정적인 부모를 둔 일부 아이들만 참여할 수 있는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그는 “학교 교실을 비롯한 일상에서 의견이 반영되는 구조가 아닌 현실에서 어느 날 국회에 가서 의견을 말한다고 아동 참여권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라며 “아이들이 늘 모여있는 공간인 학교 등에서 안건이 나오도록 하고, 이러한 의견이 살고 있는 지역 구청, 시청을 거쳐 정부까지 전달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어린이·청소년 의회를 실효성 있게 운영한다는 평가를 받는 한 지자체 관계자는 “처음엔 아동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는 게 가능할까 의문이 있었지만, 실제로 의회를 운영해보니 성인들보다 낫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며 “그런데 아동 스스로 ‘내가 의견을 내도 되는 건가’ 의문을 가지는 경우도 많더라.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교육도 필요했다”고 말했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23일 프랑스 의회에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23일 프랑스 의회에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
지난 2016~2017년 촛불 정국을 거치며 선거권 연령 하향 등 정치참여 기회를 넓혀달라는 요구도 이어졌다. 교육감을 비롯한 공직 선거에 투표할 수 있는 나이(선거연령)를 현행 ‘만 19살 이상’에서 ‘만 18살 이상’으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 주민 조례 제정이나 폐지를 청구할 수 있는 권한 역시 만 19살 이상만 가질 수 있다. 2017년 전국 370여개 교육·청소년·인권단체가 모여 출범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지난달 2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들을 대표하는 기구인 학생회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으며, 학교운영위원회에도 학생이 동등한 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다”며 법 개정을 촉구했다. 또 “청소년은 선거권이 없다는 이유로 지역사회에서도, 교육청·지자체 정책 논의에서 ‘없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청소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참여권 확대 정책을 바란다”고 요구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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