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과 공모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뒷조사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이 16일 서울 서초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때 국가정보원(국정원)과 공모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뒷조사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송인권)는 16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국고등손실) 혐의로 기소된 박 전 차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 전 차장은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으로 근무하던 2010∼2012년 초 이현동 당시 국세청 차장·청장의 지시를 받고 국정원의 김 전 대통령 해외비자금 의혹 뒷조사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외 정보원에게서 정보를 캐내기 위해 대북 공작에 써야 할 국정원 자금을 낭비한 혐의다.
검찰은 박 전 차장이 정치인에 대한 뒷조사가 국정원의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징역 2년을 구형한 바 있다. 반면 박 전 차장 쪽은 역외 탈세, 즉 국고가 부당하게 외국으로 흘러나가는 걸 막는 일이 박 전 차장 본연의 업무였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국정원 예산 횡령 행위에 대해 피고인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공범으로 보려면 피고인이 그들의 범행을 이용해 자신의 의도를 실현했다는 것이 입증돼야 한다”며 “피고인은 원 전 원장과 이 전 청장의 지시에 의해 해외정보원에게 국정원 자금을 전달하는 데 관여하게 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 전 차장이 원 전 원장 등의 범행을 이용해 자신의 의도를 실현하거나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인지해 업무상 횡령을 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은 국정원이 한정한 정보만으로 관련 사건에 수동적으로 임했고, 국정원 내부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외부자 지위에 있었다”며 “이 전 청장에게 비자금 추적 지시를 받은 뒤에도 진행 과정이나 해외공작원에게 주는 자금 등이 어떻게 조성되는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앞서 박 전 차장에게 국정원에 협조할 것을 지시한 이현동 전 국세청장도 같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지난해 8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이 전 청장이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의 정치적 의도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두 사람 사이의 공모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법원 판단을 수긍하기 어렵다며 항소 뜻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차장은 검찰 조사 때 일관되게 국정원이 직무범위를 벗어나 정치적 목적으로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추적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인정했다”며 “박 전 차장과 공범 관계로 따로 재판을 받은 최종흡 전 국정원 3차장과 김승연 전 국정원 대북공작국장도 지난달 26일 같은 혐의에 대해 유죄 선고돼 법정구속된 바 있다”고 밝혔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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