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변호사가 2014년 12월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서 박한철 헌재소장이 해산을 선고하는 주문을 읽자 “민주주의를 살해한 날입니다.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외치다 방호원들에게 끌려 나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세월호 추모집회에 참석했다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권영국 변호사 재판에서 법원이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를 이유로 공소기각 판단을 내렸다. ‘공소기각’이란 검찰이 제기한 소송 조건에 절차적 하자가 있을 때 사건을 심리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검찰 공소장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사건 자체를 기각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장두봉 판사는 22일 공무집행방해와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권 변호사의 선고 기일을 열어 검찰의 공소를 기각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2015년 4월18일 ‘세월호 1주기 범국민대회’와 8월15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에서 민변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을 했다. 당시 권 변호사는 광화문 광장이 차벽으로 가로막힌 상황에서 경찰과 집회 참가자가 대치하는 가운데 경찰의 이동을 방해하고, 해산명령에 불응했다는 등의 이유로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장 판사는 혐의의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를 지적했다. 권 변호사의 공소장을 보면 범죄사실 맨 앞에 ‘피고인의 범죄전력’이 기재됐다. 장 판사는 “범죄유형과 내용에 비춰 법령이 요구하는 사항 외의 내용을 공소장에 기재하면 법관에게 예단이 생기게 한다”며 “기소 내용과 관련 없는 사실이 장황하게 적혀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제시한 범죄 사실 중 사건의 진실 파악에 장애가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세월호 추모집회를 ‘불법폭력집회’라고 표기하거나, ‘최근 몇 년간 볼 수 없던 극렬한 폭력집회’라는 표현을 쓰는 등 폭력성을 부각하는 표현이 문제됐다. 장 판사는 “기소된 범죄 사실에 포함되지 않아 심리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라며 “(공소장이) 유죄의 예단을 부르고, 범죄의 실체 파악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권 변호사는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로 공소기각을 판결한 사례는 매우 드물어 재판부 판단은 고무적이다. (다만) 내용적인 판단이 이뤄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밝혔다. 당시 권 변호사에게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알려진 경찰은 검찰 조사에서 “(권 변호사에게) 폭행을 당한 적이 없다”며 권 변호사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그러나 검찰은 집회 현장을 채증한 동영상을 증거로 제시해 권 변호사를 기소했다. 그 뒤 4년간 이어진 재판에서 사본 파일로 제출된 집회 채증 영상의 디지털 증거능력 유무를 두고 검찰과 다투기도 했다.
한편 장 판사는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결정을 내렸을 때 법정에서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운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권 변호사가 박한철 당시 헌재소장이 주문을 모두 낭독한 뒤 발언한 점을 들어 “방해 목적보다 선고를 마친 걸로 생각하고 결과에 대한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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