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의 비대면 금융거래를 제한한 우정사업본부 조처는 장애인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5부(재판장 김진철)는 고아무개씨 등 정신장애인 18명이 국가(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낸 차별 구제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우정사업본부가)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지 않은 편의를 제공해 장애인을 불리하게 대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우정사업본부 쪽에 “30일 동안 모두 100만원 이상 거래할 경우 한정후견인과 동행하게 한 조치를 중단하고, 100만원 미만 거래할 경우 체크카드 거래 등이 가능한 시스템을 6개월 안에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우정사업본부는 고씨 등에게 하루 10만원씩 지급해야 한다. 재판부는 또 고씨 등에게 각 위자료 50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했다.
한정후견을 받는 정신장애인 고씨(정신장애 2급)는 우체국의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불편함을 겪다가, 정신장애인 17명과 함께 지난해 11월 국가를 상대로 “정신장애인 차별 행위를 중단하라”며 소송을 냈다.
우정사업본부가 운영하는 우체국은 한정후견을 받는 정신장애인의 비대면 금융거래를 제한하고 있다. 예금한 돈을 사용하려면 직접 우체국을 방문해야 한다. 체크카드와 인터넷뱅킹도 이용할 수 없고, 30일간 100만원 이상 거래할 땐 후견인과 동행해야 한다. 우정사업본부는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조처”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금융상품 및 서비스 제공 차별 금지)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정신장애인의 권리 행사를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한정후견 제도 취지를 왜곡해 오히려 권리 행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정후견은 법원이 지정한 후견인으로 하여금 사무 처리 능력이 부족한 이들의 법률 행위를 지원하게 하는 제도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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