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가른 뇌물액수
법인 돈으로 뇌물 줘 횡령 해당
50억 넘어 특경법 최소 5년 이상
파기환송심, 대법 인용 땐 재수감
실형 피할 가능성은
2심은 ‘수동적 뇌물’로 봐 집유
대법은 ‘승계 특혜’ 노린 뇌물 판단
형량 절반 줄일 ‘작량감경’ 어려워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2월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의왕/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대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공여 액수를 2심과 달리 갑절 이상 많다고 판단하면서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1심에서 정유라씨에게 사준 말 3마리 구입대금(34억1797만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16억2800만원)을 뇌물이라고 본 반면 2심은 이를 무죄로 판단했는데, 대법원이 이날 최종적으로 뇌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29일 이 부회장 상고심에서 이런 판단을 내리면서,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쪽에 건넨 뇌물액수는 운명을 가를 ‘50억원’을 넘어서게 됐다. 삼성의 법인 돈을 이용한 뇌물은 곧바로 이 부회장의 ‘횡령’ 금액이 되는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은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의 이날 판결로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뇌물액은 총 86억8081만원이다.
이번 대법원 선고대로 파기환송심 결과가 나온다면 이 부회장은 실형을 피하기 어렵다. 3년 이하 징역 또는 금고형에 한해서만 받을 수 있는 집행유예는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앞서 이 부회장은 1심에서 뇌물액 89억2227만원이 인정돼 징역 5년형을 받고 수감되었다가 2심에서 뇌물액이 ‘50억 이하’인 36억3484만원으로 줄어들면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다만 대법원은 항소심의 재산국외도피죄 무죄 판단은 원심대로 유지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회삿돈 37억원을 최순실씨가 소유한 코어스포츠 명의의 독일 계좌로 송금하고, 말 구입액 등 42억원을 독일 삼성 계좌에 보낸 것이 재산국외도피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재산국외도피죄는 도피액이 5억~50억원이면 징역 5년 이상, 50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최소 10년형에 처해질 만큼 처벌 수위가 높다. 대법원이 재산국외도피죄에 대해 무죄 판단을 유지하면서 이 부회장의 재수감 여부는 파기환송심의 뇌물죄 판단으로만 가려지게 됐다.
이 부회장이 실형 선고를 피할 수 있는 ‘실낱같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작량감경’을 적용해 법정형의 하한을 징역 5년에서 2년6개월로 절반으로 줄인 뒤, 3년 이하의 형과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다. ‘작량감경’은 정상 참작의 사유가 있는 경우 재판부 재량으로 형의 상한과 하한을 ‘2분의 1’로 감량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이 부회장의 2심 재판부도 이 부회장이 ‘대통령의 강요에 의해 수동적으로 뇌물을 건넸으며, 그에 따른 특혜나 이익을 얻은 것이 없다’고 판단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특경가법상 횡령액이 5억~50억원일 때는 최소 3년의 징역형에 처하게 돼 있는데 작량감경을 해준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선고로 재판부가 ‘작량감경’했던 사유 대부분이 ‘제거’된 상황이다. 특히 대법원이 영재센터에 넘어간 16억원을 승계작업 지원 등을 대가로 한 ‘부정청탁’으로 인정하면서 뇌물죄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 '수동적 뇌물'이 아닌 부정한 청탁에 따른 '적극적 뇌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작량감경’을 통해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내리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 라이브 |뉴스룸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