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1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10차 공개변론 당시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사진공동취재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의 도움을 기대하며 묵시적 청탁과 뇌물을 건넸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온 날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이 강연에 나와 ‘탄핵심판 뒷이야기’를 풀어놨다. 김 전 재판관은 2017년 3월 만장일치로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한 8명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한명으로, 헌재 결정 당시 “미르·케이(K)스포츠재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 퇴임 대비용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9일 저녁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시민 80여명이 모인 가운데 김 전 재판관의 특별강연이 열렸다. 참여연대 판결비평선집 <현재의 판결, 판결의 현재> 출판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김 전 재판관은 “탄핵심판 처음부터 이 사건이 매우 심각한 헌법 위반이라는 데에는 재판관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면서 “국가의 위기 상태를 오랫동안 버려두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해 재판관 전체가 (2017년 3월)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퇴임 전에 끝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김 전 재판관은 ‘공무원 임면권 남용’과 ‘세월호 참사 생명권 보호 의무와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 위반’ 등을 탄핵 사유로 인정하지 않은 이유도 설명했다. 김 전 재판관은 “문체부 공무원들이 잘리고 이런 부분은 사실 별 자료가 없었다. 특검 자료는 없었고 검찰 자료만 있었는데 3월에 선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특검 자료를 기다리기엔 시간이 없었다”며 “그런 것들이 부족해 문체부 공무원 그 부분은 기각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전 재판관은 “헌재 탄핵 결정문에는 미르·케이스포츠재단이 최순실을 위한 것으로 쓰여있지만 이건 내가 보니 박 전 대통령 퇴임 뒤를 위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헌재는 결정문에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은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 플레이그라운드와 더블루케이 및 케이디코퍼레이션 지원 등과 같은 최서원(최순실)의 사익 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하였다’고 적었다.
세월호 참사를 탄핵 사유로 인정하지 않은 데 대해선, 김 전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이 집무실에 나가 근무를 했다면 상황파악이 빨랐을 것이고, 강하게 지시했다면 밑에서도 부지런히 구조했을 거라고 봤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의식적으로 집무를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뭔가 하기는 했는데 신통찮았다고 봤다”며 “탄핵사유로는 볼 수 없지만 대통령 잘못은 지적하는 게 맞다고 봤고 보충의견 형태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미스터 소수의견’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김 전 재판관은 그간 헌재에서 자신이 냈던 소수의견에 대한 소신도 재차 밝혔다. 김 전 재판관은 180여쪽에 이르는 자신의 소수의견 일부를 읽어내려가며 “다수결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소수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관용과 다원성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참된 정신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재판관은 2014년 12월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당시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낸 바 있다.
마지막으로 김 전 재판관은 소수의견의 의미에 대해 “판사들에게는 굳어져 있는 판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시민들에게는 하나의 영감을 주는 자원”이라며 “지금 당장 힘 있는 효력을 발휘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다수의견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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