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6일 충남 아산에 위치한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을 방문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번 대법원 판결이 아쉽지만, 삼성이 어떤 특혜를 취득하지도 않았음을 인정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지난 2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 직후 이 부회장 쪽 이인재 대표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가 한 말이다. 이 변호사는 “형이 가장 무거운 재산국외도피죄는 무죄가 확정됐다. 뇌물액을 늘린 결정적 요인이 된 말 3마리 구입비도 ‘사안의 본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삼성 쪽 주장은 대법원 판결 취지를 과도하게 축소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판단의 핵심이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작업’이라는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판단으로 이번 사건의 구도가 180도 바뀌었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대통령의 겁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뇌물을 건넨 사건’이라고 봤지만, 대법원은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바라고,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공여자’로 인정했다. 실제 이 부회장 승계작업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무리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이 부회장 쪽의 “어떤 특혜도 없었다”는 주장이 간과한 사실이다.
이 부회장에게 뇌물을 받아 챙긴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대법원 판결문을 살펴보면, 대법원 의중이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법원은 최씨가 삼성그룹에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을 요구한 혐의(강요)에 무죄 판단을 내리면서도 이런 판단을 분명히 했다. “신동빈(롯데 회장)과 이재용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따른 것은, 이에 편승해 직무와 관련한 이익을 얻기 위해 (대통령의) 직무행위를 매수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한 것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대법원은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이라는 부정청탁을 정면으로 인정했다. 부정청탁은 이 부회장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가벌성 요소이자 양형 사유”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 쪽은 형이 무거운 재산국외도피죄에 무죄 판단이 내려졌다는 점에 의의를 두면서, 원심에서 이미 살시도 등 말 3마리의 무상 사용을 뇌물로 인정했기 때문에 말 3마리 구입비(34억1797만원)를 뇌물로 인정한 것에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말 3마리의 뇌물 인정 여부는 이 부회장 신변 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법원이 말 3마리 구입비를 뇌물로 인정하면서, 이 부회장의 최종 횡령액은 36억원(항소심)에서 87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른바 집행유예 경계선인 ‘50억원’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한 서초동 변호사는 “삼성 쪽의 지상목표는 이 부회장의 구속을 막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말 3마리 가격의 뇌물 인정 여부에 상당한 신경을 썼을 것”이라며 “삼성이 겉으로는 별게 아니라고 하지만 가장 아픈 대목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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