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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집집마다 거울시트 골목 곳곳엔 비상벨…‘여성안전마을’ 직접 가보니

등록 2019-09-03 17:21수정 2019-09-03 20:18

서울 종로구 연건동 ‘여성안전마을’ 조성된 지 2년
여성안전지킴이 거울·거울 시트로 따라오는 범죄자 볼 수 있어
‘막다른 길’, ‘비상벨’ 등 안전 표지판 설치
지난달 26일 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여성안전마을 입구에 걸린 지도에 각종 여성안전 설치물의 위치가 표시돼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달 26일 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여성안전마을 입구에 걸린 지도에 각종 여성안전 설치물의 위치가 표시돼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달 26일 밤 9시.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에서 서울대학교 병원을 지나 500m쯤 걸으니 ‘대학로5길’이 나왔다. 도시락집을 끼고 모퉁이를 돌자 나무 벽에 ‘이곳은 범죄예방디자인이 적용된 마을입니다‘라는 글과 함께 ‘연건 여성 안전마을’이라고 적힌 지도가 보였다. 지도에는 위기 상황에서 들어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편의점과 카페 등 ‘안전지킴이집’과 ‘여성안전지킴이 거울’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방범용 비상벨과 방범용 시시티브이(CCTV)가 어디에 있는지도 적혀 있었다.

골목에 들어가니 우선 여성안전지킴이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 볼록거울 앞에 서니 등 뒤에 누가 있는지 한눈에 들어왔다. 거울을 지나 몇 걸음 더 걷자 골목 양옆에 붙은 ‘막다른 길입니다. 안전한 길로 우회하세요’라는 노란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표지판을 따라 들어간 막다른 골목 안쪽에는 보안등이 어두운 골목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살펴보니, 골목에 있는 집 대문마다 포돌이 얼굴 모양의 ‘거울 시트’가 붙어 있다. 현관문 번호키 등을 누를 때 누군가 뒤에서 훔쳐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용도다. 골목 입구에 있는 방법용 비상벨을 누르니 비상벨 위에 있는 수신기로 “네, 말씀하세요”라는 소리가 즉시 흘러나왔다. 종로구 시시티브이 통합안전센터였다.

지난달 26일 저녁 서울 종로구 연건동 여성안전마을 골목길에 경찰 모양을 한 거울 시트와 비상벨 위치를 알리는 팻말이 붙어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달 26일 저녁 서울 종로구 연건동 여성안전마을 골목길에 경찰 모양을 한 거울 시트와 비상벨 위치를 알리는 팻말이 붙어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5월 관악구에서 귀가하는 여성을 따라 원룸으로 함께 들어가려 했던 30살 남성의 강간미수 사건, 6월 강동구에서 30대 남성의 주거침입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서들이 여성 대상 치안사업을 앞다퉈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6월부터 관악구와 양천구를 중심으로 ‘여성안심홈’ 4종 세트를 지원하고 있고, 노원경찰서는 지난달 하계동에 ‘여성 안심마을’을 만들었다. 종로구와 혜화경찰서는 11월까지 명륜동 일대에 ‘여성 안심마을’을 만들 계획이다.

종로구와 혜화경찰서가 2017년 10월 7만6천㎡ 크기로 조성한 연건 여성 안전마을은 이런 사업의 원조 격이다. 이 일대는 서울대병원과 성균관대 주변이어서 간호사와 대학생 등 여성 1인 가구가 밀집되어 있다. 실제 이날도 교대근무와 수업을 마치고 다세대주택과 원룸촌 등으로 귀가하는 간호사들과 대학생들을 자주 마주쳤다. 길의 밝기를 높이기 위해 엘이디(LED) 조명을 설치한 ‘여성안심귀가길’과 성범죄 발생이 잦은 지역을 한시적으로 정해 운영하는 ‘여성 안심구역’과 달리 ‘여성안전(안심)마을’에는 곳곳에 여러 가지 도구가 설치된 게 특징이다. 연건 여성 안전마을에만 여성안전지킴이 거울 29개, 거울 시트 24개, 시시티브이 29개, 비상벨 4개, 비상벨 위치 안내 표지 10개, 막다른 길 표지 15개 등이 설치되어 있다.

지난달 26일 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여성안전마을 골목길에 시시티브이(CCTV), 비상벨, 여성안전지킴이 거울 등이 설치돼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달 26일 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여성안전마을 골목길에 시시티브이(CCTV), 비상벨, 여성안전지킴이 거울 등이 설치돼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여성 안전마을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연건동에 40년 동안 거주했다는 한태희(65)씨는 동네가 여성 안전마을로 지정된 뒤부터 서울대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딸을 배웅하러 가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씨는 “이전에는 골목이 컴컴해서 위험했다. 그런데 골목마다 거울 시트와 여성안전지킴이 거울이 생기고 비상벨도 있고 하면서 훨씬 안심이 된다”며 “과거에는 동네에 술에 취한 채 성기를 드러내놓고 널브러져 있는 노숙자들도 있었는데, 이들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5년째 연건동에 살고 있다는 김혜숙(49)씨도 “이전에는 골목이 어두워 밤 11시에 학원 마치고 돌아오는 딸을 데리러 버스정류장까지 매번 나갔는데, 거울과 보안등이 설치된 이후 딸이 ‘이제 엄마 안 나와도 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홍보가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 설치된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여성들이 곳곳에 부착된 거울 시트와 비상벨 등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지윤(30)씨는 “집 골목 입구에 여성안전지킴이 거울이 있어서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 안심이 된다”면서도 “거울 시트가 어떤 역할인지, 비상벨이 있는지 몰랐다”고 답했다. 대만인 유학생 팽자영(22)씨도 “거울 시트가 붙어있는 건 알았는데, 그냥 거울인 줄 알았을 뿐 기능은 몰랐다”며 “비상벨이나 안전지킴이집도 무슨 기능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연건동 여성 주민들은 대부분 “지금보다 더 보안등이 많고 밝았으면 좋겠다”고 답했지만, 다세대 가구가 모여있는 마을 특성상 엘이디 조명 등을 설치하는 걸 반대하는 주민들도 있다. 일주일에 2∼3번 연건동을 순찰하는 혜화경찰서 관계자는 “보안등을 밝게 설치하고 싶어도 지하에 거주하는 분들 집으로 빛이 곧장 들어가거나 잠자는 데 방해된다는 민원이 있어서 고충이 있다”고 털어놨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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