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체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포인트’ 조합원들이 3일 낮 경기 판교 넥슨 사옥 앞에서 고용안정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 넥슨은 최근 한달 동안 게임 개발을 잇달아 중단하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직원 200여명이 전환배치 대상이 돼 조합원들이 고용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이날 집회는 게임업계 최초의 고용안정 보장 촉구 집회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우리는 넥슨이라는 배에 타 노를 젓고 있습니다. 아니, 노만 젓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갑판 위로 올라가 어디로 갈지 방향을 제시할 권한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로지 소수의 경영진에게만 그 권한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배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면, 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방향을 제시했던 경영진들은 ‘배가 잘못된 건 너희가 노를 열심히 젓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노동자 탓을 합니다. 그래놓고 자신들은 제일 먼저 다른 배를 갈아탄 뒤 우리에게 ‘알아서 살길을 찾아가라’고 합니다. 이게 지금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네이버 계열 라인프렌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오세윤 네이버 사원노조 ‘공동성명’ 지회장이 회사 경영의 실패 책임을 노동자에게만 전가하는 국내 아이티(IT)·게임업계 경영진들을 비판하기 시작하자 어수선했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100m 가까이 늘어선 집회 참가자들은 언제 어떻게 자신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권고사직 통보의 두려움에 숨을 죽였다.
3일 낮 경기도 성남시 판교 넥슨코리아 사옥 앞. 국내 게임업계 ‘빅3’로 꼽히는 넥슨이 최근 한달 사이 게임 개발을 잇달아 중단하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직원 200여명이 대거 전환배치 대상이 되어 고용 불안을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넥슨지회(넥슨 노조)가 회사에 고용안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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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에는 넥슨 노조 조합원을 비롯해 네이버와 스마일게이트 등 판교 아이티(IT)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600여명(주최 쪽 추산·경찰 추산 400명)이 참여해 잇따른 ‘드롭’으로 대기발령 상태가 된 직원 200여명 전원에 대한 전환배치 보장을 회사에 요구했다. ‘드롭’은 게임업계에서 프로젝트 중단을 뜻하는 은어로, 프로젝트 개발에 참여한 직원들 사이에선 사실상 권고사직 통보로 받아들여진다. 배수찬 넥슨 지회장은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끝나면, 게임 노동자들은 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새 팀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다시 봐야 한다. 그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일을 주지 않는 업종은 게임회사밖에 없다”며 “‘게임왕국’이라는 일본은 게임회사의 근속연수가 10년 이상으로 한국보다 몇 배 더 길다. 고용불안 문제는 게임업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게임회사의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용안정은 우리 모두에게 이득이다’라는 주제로 발언한 홍종찬 넥슨 수석부지회장은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드라이버에게 헬멧이나 안전벨트도 주지 않고 1등을 하라고 하면, 내가 죽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액셀을 밟고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겠나”라며 “오히려 위험에 빠졌을 때 누군가 날 구하러 올 것이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죽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안정 없이 아이티(IT) 기업의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넥슨의 노동자다 넥슨에서 책임져라”, “조직쇄신 핑계그만 고용안정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노동가요 ‘철의 노동자’를 부르기도 했다. 주최 쪽이 당초 예상했던 참가자 숫자(300명)보다 두배 가까이 많은 인원이 몰리면서 일부는 자리에 앉지 못한 채 서서 집회를 지켜봤다.
넥슨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임한나(38)씨는 “집회에 참여하는 건 처음이어서 ‘투쟁’같은 구호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노조에서 이런 자리를 만들어줘 고맙다”며 “게임회사는 문제가 생기면 ‘이직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단결이 어려운 조직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이 모인 걸 보고 좀 울컥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게임업계에 10년 이상 종사했다는 문아무개씨는 “옆 팀의 경우 프로젝트가 3번이나 드롭되는 걸 봤다”며 “사실 요즘에나 ‘고용불안’이란 단어가 나오는 거지 그 전에는 ‘고용안정’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프로젝트가) 빠개지면 다른 데 가서 일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30대 개발자 김아무개씨도 “최근 3~4년 사이 게임시장이 침체하면서 정리된 중·소규모 게임회사가 많다. 이젠 갈 곳이 없다 보니 직원들이 행동에 나서게 된 것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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