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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강서구 세 모자’ 비극 뒤엔 쥐꼬리 생계급여 뺏는 ‘삭감 복지’

등록 2019-09-06 06:01수정 2019-09-06 17:40

88살 노모·중증장애 형 간병하느라
부양의무자 동생 일용직 못나갔지만
월 부양비 25만원 매겨 급여 깎고
국민·기초연금도 빼 15만원만 지급

장애인연금 등 합쳐도 월 100만원
3인가구 최저생계비 못미친 생활비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시 강서구 한 임대아파트에서 병을 앓고 있던 어머니(88)와 중증 지체장애를 지닌 형(53)을 돌보던 50대 남성이 결국 자신과 가족을 모두 숨지게 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초수급자에 장애인연금을 받는 모자와, 이들을 돌보느라 일조차 할 수 없었던 둘째 아들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은 한달 생활비는 3인 가구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계비 약 112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100만원가량이었던 것으로 <한겨레> 취재 결과 확인됐다.

특히 모자가구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뿐 아니라 기초연금·장애인연금·국민연금 등 생활 안정을 위한 거의 모든 사회보장 급여를 받고 있었으나 ‘부양의무자 제도에 따른 간주부양비’ ‘줬다 뺏는 기초연금’ ‘기초연금 단계적 인상’ 등으로 국가가 보장하는 최소한의 공적 지원금조차 받지 못했다.

■ 모자가 받은 생계급여는 월 15만원

5일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2000년부터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이었던 어머니와 두 아들은 2011년 어머니와 첫째 장애인 아들 2인 가구와 둘째 아들 1인 가구로 분리된다. 일용직을 하는 둘째에게 벌이가 생기면서 수급 자격을 박탈당할 것을 우려한 궁여지책으로 추정된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인 어머니와 첫째 아들의 2인 가구 생계급여 지급 기준은 87만1958원이지만, 실제로는 소득인정액을 뺀 만큼의 금액이 생계급여로 지급됐다. 모자가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매달 받은 생계급여는 약 15만원에 불과했다. 극도로 건강이 나빴던 모자에게 도대체 어떤 소득이 있었다고 본 것일까?

우선 어머니의 부양의무자인 둘째 아들이 부양비를 낼 것으로 ‘간주된’ 금액 약 25만3천원이 소득인정액으로 잡혔다. 현행법상 소득·재산이 수급 기준에 부합할 정도로 가난해도 부양 능력이 있다고 판단된 부모·자녀 및 배우자인 ‘부양의무자’가 있다면 생계급여·의료급여 수급자가 될 수 없다. 부양능력 있음과 없음 사이엔 ‘부양능력 미약’ 구간이 있는데, 부양능력이 미약한 부양의무자가 부양비 일부를 부담하게 하는 대신 수급권을 주긴 한다. 이 경우 정부는 부양의무자가 부양비를 지급할 것으로 간주하는 ‘간주부양비’를 계산해, 수급자 가구 생계급여에서 그만큼의 금액을 자동으로 빼버리고 지급한다. 정부가 수급자 가구에 실제로 부양비가 지급되는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생계급여에서 부양비로 간주된 금액을 삭감하는 데 대해 ‘책임 방기’라는 비판이 계속돼 왔다.

강서구 세 모자 사건
강서구 세 모자 사건

■ 실제 소득없어도 부양비 부과한 정부

둘째 아들은 올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형과 어머니를 돌보느라 일용직 일마저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왜 간주부양비가 부과된 것일까? 부양의무자 가구 소득 조사는 해마다 3월과 9월 두차례 하는데 올해 3월 조사에선 지난해 하반기(10월~올해 3월)에 번 소득이 반영돼 간주부양비가 발생했다는 것이 복지부 설명이다. 6개월 동안 번 돈을 합산해 월평균 소득 약 254만원을 산출한 뒤 기준 중위소득 100%(1인 가구 170만7008원)를 빼고 남은 금액 중 30%인 25만원을 어머니와 형 생계급여에서 삭감한 것이다. 앞서 2018년 하반기엔 간주부양비가 부과되지 않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둘째 아들이 소득 변동 사실을 직접 신고했다면 생계급여에서 간주부양비를 빼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나 지자체가 생계급여 삭감 사유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도 않아 가족은 간주부양비 존재조차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어머니의 기초연금 약 25만3천원도 소득인정액으로 잡혔다.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 70% 65살 이상에게 지급되지만, 극빈곤층인 생계급여 수급 노인들에겐 그만큼의 금액이 다음달 생계급여에서 빠져나가 ‘줬다 뺏는 기초연금’으로 불린다. 또 어머니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월 21만1천원의 배우자 유족연금을 받았는데, 이러한 급여 역시 소득인정액으로 잡혔다.

이렇게 정부는 간주부양비·기초연금·국민연금 약 71만7천원을 빼고, 어머니와 형에게 월 생계급여로 약 15만4천원을 지급했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장애인연금 및 부가급여 38만원, 기초자치단체 지원 4만원 등을 받아 세 식구에게 전해진 공적 이전소득은 매달 약 100만원이었다. 매달 약 4만원의 주거급여가 지급되긴 했으나 보통 5만~6만원인 임대아파트 월세 내기에도 모자라는 돈이었다. 부족한 생활비를 쪼개 의료급여 수급자에게도 때때로 발생하는 환자 본인부담금이나 추가 간병비도 내야했을 것이다.

■ 간병 부담에 빈곤까지 짊어졌던 동생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가 조금만 빨랐어도 세 모자의 곤궁함을 덜 수 있었다. 2020년부터 생계급여 수급자 가구에 중증장애인이 있으면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면 둘째 아들에게 매겨진 간주부양비 자체가 사라졌을 것이다.

7일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정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제도 시행 원년부터 19년간 수급을 받아온, 오래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머니와 두 아들. 그중 유일하게 일할 수 있었던 둘째 아들은 충분치 않은 장기요양보험과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로 생긴 ‘돌봄·간병 공백’을 스스로 채웠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도 못한 채 중복 수급 방지를 명목으로 복잡하게 설계된 제도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까지 홀로 감당해왔다. 개인이 메우던 사회보장 곳곳의 빈틈에서, 소리없이 숨지는 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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