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 엘지 트윈빌딩. <한겨레> 자료사진
같은 시간에 동일한 가격대로 주식을 매도·매수하는 ‘통정매매’ 방식으로 세금을 포탈해 기소된 엘지 총수일가 전원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는 엘지 일가 사람들의 주식거래를 전담한 엘지그룹 재무관리팀 전·현직 팀장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주식거래 당사자로서 양벌규정에 따라 함께 재판에 넘겨졌던 14명의 총수일가도 무죄 판단을 받았다.
16명의 피고인과 변호사들이 대거 출석한 까닭에 이날 선고 기일은 대법정에서 열렸다. 재판부는 판결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피피티(PPT) 발표 자료까지 만들었다. 피고인과 방청객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피피티 화면을 띄우고 판결 이유를 낭독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재판부는 “공소사실 자체가 상당히 복잡하고 법률규정이 여러 가지라 피고 인이나 방청객이 이해하기에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며 약 30분간 피피티 내용을 설명했다.
엘지그룹 구광모 회장의 친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 총수일가는 2007년~2017년 경영권과 관계있는 엘지 및 엘지상사 주식을 102차례 상호 거래하면서, ‘특수관계인’ 거래 시 20% 할증되는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 156억 가량을 탈세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이들이 장내에서 서로 짜고 주식을 거래하는 ‘통정매매’ 방식으로 조세포탈을 해 왔다고 보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들의 주식거래가 특수관계인 간 거래에 해당하지 않고,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가 없었으며, 조세포탈의 의도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불특정 다수가 거래하는 장내에서 총수일가 간 주식매매가 이뤄진 점을 들어, 가족(특수관계인) 간 거래가 아닌 ‘경쟁매매’가 이뤄진 것이 맞다고 보았다. “장내에서 매도·매수자는 거래 상대방이 누군지 알 수 없다. 제3자의 개입을 막을 수 없어 특정인과 특정 수량대로 주식 거래가 체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통정매매로 인해 장내 경쟁매매의 본질이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특수관계인 간 거래와 제3자 거래가 모두 이뤄지는 상황에서 특수관계인 간 거래만 ‘비정상적 거래행위’라 판단하는 것은 “세무행정편의적 해석”이라고도 지적했다.
재무관리팀 직원들이 증권거래소 규정에 반하는 방식으로 주식 거래를 요청한 행위도 “부정한 행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엘지 쪽은 엔에이치(NH) 증권과 거래 시 통화 내용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녹음이 되지 않는 휴대폰으로 주식 매매를 요청하고, 거래 주문표도 작성하지 않았다. 검찰은 엘지가 통정매매 및 그에 따른 조세포탈을 은폐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통화 녹음이나 주문표 작성은 증권사의 의무이고, 이로 인해 조세의 부과 및 징수가 불가능하거나 곤란하게 됐다고 볼 수는 없다”며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총수일가 주식거래를 책임진 두 재무관리팀장이 “양도소득세 포탈의 의도도 없었다”는 변호인 입장도 인정했다. “주주(총수일가)가 특수관계인 간 거래를 지시한 적이 없는데 처벌을 감수하면서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없고, 20% 할증되는 양도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인식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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