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 붙은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 포스터.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제공.
수술을 앞둔 30대 장애인이 한 달 동안 보이스피싱 조직에 두 차례나 이용당해 경찰에 입건됐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대출을 해주겠다’고 접근해 해당 장애인의 계좌를 범죄에 이용하려 했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중증 장애인 정미순(30·가명)씨는 다리 관절 수술을 위해 700만원이 필요했다. 병원은 ‘3년 안에 수술하지 않으면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지만, 정씨는 당장 수술비를 마련할 수 없었다. 이미 은행에서 4000만원을 대출받은 그는 한 달 수입 165만원 가운데 매달 90만원을 원금과 이자로 내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지난 7월 말께 정씨에게 ‘대출 요건이 완화돼 대출이 가능하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대출업자는 “정상계좌인지 확인하기 위해 체크카드를 보내달라”고 했고 마음이 급했던 정씨는 자신의 카드를 대출업자에게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씨의 계좌에는 500만원이 입금됐지만, 인출이 정지됐다. 뒤늦게 확인해 보니 500만원은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입금한 돈이었다. 돈을 송금한 뒤 이상하게 여긴 피해자의 신고로 출금이 막힌 것이었다. 그 뒤 정씨는 온라인 거래가 정지됐고 은행 대면 거래만 가능해졌다.
한 달이 채 되기 전인 지난 8월 중순엔 ‘ㄱ캐피탈’에서 정씨에게 대출이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ㄱ캐피탈 누리집에도 상담사가 말한 같은 이름의 대출 상품이 있었다. 상담사는 “대출을 받으려면 실적이 있어야 한다”며 “계좌로 1500만원을 입금할 테니 수표로 뽑아 40분 뒤 현금으로 바꿔 ㄱ캐피탈로 입금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씨는 은행 창구에서 출금이 막혔다. 은행 직원은 ‘보이스피싱’ 같다고 설명했고 정씨는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
결국 정씨는 자기 명의의 체크카드를 타인에게 빌려준 혐의(전자금거래법 위반)와 보이스피싱 피해자금을 인출하려고 한 혐의(사기 방조)로 입건됐다. 서울 구로경찰서 관계자는 “정씨가 보이스피싱에 직접 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씨가 먼저 신고한 점 등을 참작해 사건을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장애인들은 정보 소외로 변칙적인 보이스피싱 범죄 등에 취약하다”며 “또 의료비 등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비용이 많아 (궁박한 상황에 닥치면) 보이스피싱에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정환봉 이유진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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