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지난 2월1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하급심의 판단이 정반대로 엇갈렸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 성폭력 사건에서 대법원이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9일 오전 10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지사 상고심 재판을 연다. 안 전 지사는 1심에서 10개 범죄혐의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은 징역 3년6개월 실형을 선고하고 안 전 지사를 법정구속했다. 대법원은 법률 적용 등을 살피는 법률심인데다 최근 ‘성인지감수성’ 판례를 내놓은 만큼, 안 전 지사는 상고심에 대비해 변호인단(5명→17명)을 대거 보강해왔다.
■ 유일한 증거 ‘피해자 진술’, 믿을 수 있나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2018년 2월 사이 네차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한차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다섯차례 강제추행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두고 정반대의 판단을 내렸다.
1심 재판부(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조병구)는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며 모두 무죄를 선고한 반면,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홍동기)는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진술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세하고 모순되는 부분도 없다”며 10개 범죄혐의 가운데 9개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1심과 달리 피해자 진술을 뒷받침하는 간접 정황으로 안 전 지사 진술의 신빙성도 따졌다. 2심 재판부는 성폭력 폭로 직후 안 전 지사가 “합의에 따른 관계였다는 비서실 입장은 잘못”이라고 했다가, 법정에서 이를 뒤집은 점 등 피고인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성관계 이후 피해자의 행동을 두고도 1·2심은 다른 판단을 했다. 원심은 피해자가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집을 찾으려 애쓰고 평소와 다름없이 안 전 지사를 지지하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다며 ‘일반적인 성폭력 피해자답지 않다’는 안 전 지사 쪽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2심은 대법원의 ‘성인지감수성’ 판례를 들어 이런 주장이 “편협하다”고 지적했다.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 직장 내 성폭력 사건, ‘위력’ 판단 어떻게
안 전 지사 사건은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 발생한 성폭력 문제로, 안 전 지사에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혐의가 적용됐다. 위력은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무형의 힘’을 뜻한다. 1심은 위력의 존재와 행사를 구분해, 안 전 지사와 피해자 사이에 위력은 존재했지만 “실제 위력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없다”고 봤다. 당시 위력의 존재와 행사를 나눠 볼 수 있는지를 두고 여성계 등이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안 전 지사의 위력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했다”고 판단했다. 지방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 임면 권한을 가진 도지사가 이런 무형의 권력관계를 이용해 간음까지 나아갔다고 본 것이다. 또 안 전 지사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침대로 데리고 가 옷을 벗기는 물리력을 행사했다고 지적했다.
권김현영 여성학 연구자는 “이 사건은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 내 권력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법원이 얼마나 엄중하게 다룰지 가늠할 수 있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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