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 관련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안희정은 유죄다'라고 적힌 손피켓을 하늘을 향해 던지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안 전 지사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앞으로 세상 곳곳에서 숨죽여 살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분들의 곁에 서겠습니다. 그분들의 용기에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지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해 대법원이 상고 기각으로 3년6개월 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한 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 모인 200여명의 여성들은 “보통의 ‘김지은들’이 일궈낸 승리”라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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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안희정 공대위)는 이날 대법원 선고 직후인 오전 11시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이제는 끝내자”라며 이번 대법원의 결정이 가져올 사회적 변화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피해자 김지은씨는 대법원의 결정에 대해 “공명하고 정의로운 판단에 감사하다”는 입장을 냈다. 남성아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활동가가 대독한 입장문에서 김씨는 “세상에 안희정의 범죄 사실을 알리고 554일 동안 마땅한 결과를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아파하며 지냈는지 모른다. 진실이 권력과 거짓에 의해 묻혀 버리는 일이 또 다시 일어날까 너무나도 무서웠다”며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2차 가해로 거리에 나뒹구는 온갖 거짓들을 정리하고 평범한 노동자의 삶으로 정말 돌아가고 싶다”고 소회를 전했다.
안희정 공대위는 이날 대법원이 직장 내 성폭력 범죄에 있어 위력과 ‘피해자다움’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확립했다고 평가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오늘 대법원은 ‘피해자다움’에 갇혔던 성폭력 판단 기준이 잘못됐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제 ‘피해자다움’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며 “이 순간은 반성폭력 운동사에 거대한 진전을 이룬 순간으로, 여성들이 새로운 사법정의를 세운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보통의 ‘김지은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승리에 대한 기쁨을 전했다.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 관련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안 전 지사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신소영 기자
이날 파기환송에 대한 입장을 아예 준비하지 않았다는 김지은씨의 변호인 정혜선 변호사 역시 “피고인에게 적용된 범죄 성립 요건인 ‘위력’이 무엇인지는 이미 여러 판례를 통해 축적된 확고한 법률적 정의가 있지만, 현실에서 위력은 여전히 의식할 수도 없는 공기처럼 작동해 피해자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사건은 단적으로 보여줬다”며 “그동안 자신의 피해를 제대로 말할 수 없었던 수많은 권력형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들에게 이번 대법원 판결이 주는 의미는 남다를 것이다. 앞으로도 피해자들이 움츠러들지 않고 외부에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도록 이러한 판결이 계속 유지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직장 내 성폭력을 끝낼 수 있는 한국 사회의 변곡점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손영주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은 “지난해 서울여성노동자회 평등의 전화에 접수된 직장 내 성폭력 상담 819건 가운데 78%가 사장이나 직장 상사 등이 저지른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라며 “많은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자신에의 업무평가는 물론 해고까지 결정할 수 있는 업무상 위력을 가진 당사자임을 알기에 가해가 계속돼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모든 일터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넘어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건강한 실천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날 대법원 앞에 모인 200여명은 “안희정은 유죄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이제는 끝내자” 등의 손팻말을 들고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결국엔 바꾼다 미투가 이긴다” “안희정이 시작이다 다음은 네 차례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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