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영 경찰청장이 27일 오전 경찰청 브리핑실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농민 사망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고 있다. 그러나 허 청장은 자진사퇴 의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허 경찰청장 ‘수사권 조정등 현안에 유리’ 판단한듯
내부서도 “뜻밖” 반응…농민단체 반발 확산 우려
내부서도 “뜻밖” 반응…농민단체 반발 확산 우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까지 부른, 시위 과잉진압으로 인한 농민 2명 사망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이 사실상 자진사퇴를 촉구하는데도 허준영 경찰청장이 버티는 이유는 뭘까?
2년 임기의 절반 가량을 채운 허 청장은 물러날 수 없는 이유로 “임기제 청장”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경찰청장 임기제는 2003년 3월 취임한 최기문 전 청장 때 도입됐는데, 그는 경무관 인사를 놓고 청와대와 갈등을 빚다 임기 두 달여를 남긴 올 1월 물러났다.
경찰 주변에서는 최근 청와대 일각에서 허 청장 책임론이 나오고 사퇴 권유가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허 청장의 ‘사퇴 불가’ 태도는 애초부터 확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주변에서는 “1월로 예정된 경무관 인사까지는 허 청장이 하겠다는 뜻이 강하다”는 말과 함께, “수사권 조정 및 경찰공무원법 개정 등 현안에서 경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을 토대로 버티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 쪽이 자신을 밀어내려 한다는 생각에 허 청장이 더욱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말과 함께, 허 청장이 “청와대에서 확실한 태도를 보이면 나가겠다”고 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이날 발표에서 알 수 있듯, 청와대도 분명한 입장을 보인 게 아니라 비서관급 수준에서 허 청장이 사퇴하라는 ‘희망’을 경찰 쪽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내부에서는 수사권 조정 등이 걸린 상황에서 허 청장이 버티는 게 조직에 유리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까지 하고 사실상 허 청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사퇴 불가’를 고집하자,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또 경찰청장이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신뢰 추락의 부담이 따르고, 농민단체 등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경찰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사과까지 하는 마당에 경찰청장이 버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뻔뻔하다” 시민단체 “은폐 장본인이 아래에 책임 전가”
범국민대책위, 장례식 늦추고 30일 규탄대회 허준영 경찰청장이 27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부하들에 대한 문책 의사를 밝히면서도 정작 자신은 물러나지 않겠다고 밝히자, 그동안 허 청장의 퇴진을 주장해온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숨진 두 농민의 유가족들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전용철·홍덕표 농민 살해 규탄 범국민대책위’(범대위)는 이날 밤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친 뒤 대표자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특히 허 청장의 태도에 대한 집중 성토가 이어졌다. 박석운 범대위 집행위원장은 “사람을 죽여놓고도 33일 동안 버티더니 이제는 입에 발린 사과만 하고 넘어가려고 한다”며 “사태의 총책임자인 경찰청장이 그 살인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부하들에게만 책임을 넘기고 자신의 책임은 발뺌하면서 자리에 연연하는 경찰청장의 행태는 옹졸해 보인다”며 “허 청장 자신이 내건 ‘인권경찰’ 구호가 무너진 만큼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허 청장은 경찰 수장으로서 정치적·도의적 책임뿐 아니라 사건을 주도적으로 은폐하려 한 책임이 있다”며 “‘술 마시고 넘어져 죽었다’는 발언 등을 통해 두 농민 사망의 원인과 책임을 왜곡한 장본인이 바로 허 청장”이라고 지적했다. 숨진 전용철씨의 동생 전용범(33)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어제 인권위 발표를 보고 경찰청장이 당연히 책임을 인정하고 물러날 줄 알았는데 뜻밖”이라며 “경찰청장의 파면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물러나지 않고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범대위는 이날 허 청장이 사퇴를 거부함에 따라 인권위 발표와 경찰 사과 뒤 치르려던 두 농민 장례식을 연기하고, 30일 열릴 예정인 ‘농민살해 규탄 범국민대회’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또 대규모 노숙 농성에 이은 대규모 노숙 단식농성을 벌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뻔뻔하다” 시민단체 “은폐 장본인이 아래에 책임 전가”
범국민대책위, 장례식 늦추고 30일 규탄대회 허준영 경찰청장이 27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부하들에 대한 문책 의사를 밝히면서도 정작 자신은 물러나지 않겠다고 밝히자, 그동안 허 청장의 퇴진을 주장해온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숨진 두 농민의 유가족들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전용철·홍덕표 농민 살해 규탄 범국민대책위’(범대위)는 이날 밤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친 뒤 대표자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특히 허 청장의 태도에 대한 집중 성토가 이어졌다. 박석운 범대위 집행위원장은 “사람을 죽여놓고도 33일 동안 버티더니 이제는 입에 발린 사과만 하고 넘어가려고 한다”며 “사태의 총책임자인 경찰청장이 그 살인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부하들에게만 책임을 넘기고 자신의 책임은 발뺌하면서 자리에 연연하는 경찰청장의 행태는 옹졸해 보인다”며 “허 청장 자신이 내건 ‘인권경찰’ 구호가 무너진 만큼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허 청장은 경찰 수장으로서 정치적·도의적 책임뿐 아니라 사건을 주도적으로 은폐하려 한 책임이 있다”며 “‘술 마시고 넘어져 죽었다’는 발언 등을 통해 두 농민 사망의 원인과 책임을 왜곡한 장본인이 바로 허 청장”이라고 지적했다. 숨진 전용철씨의 동생 전용범(33)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어제 인권위 발표를 보고 경찰청장이 당연히 책임을 인정하고 물러날 줄 알았는데 뜻밖”이라며 “경찰청장의 파면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물러나지 않고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범대위는 이날 허 청장이 사퇴를 거부함에 따라 인권위 발표와 경찰 사과 뒤 치르려던 두 농민 장례식을 연기하고, 30일 열릴 예정인 ‘농민살해 규탄 범국민대회’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또 대규모 노숙 농성에 이은 대규모 노숙 단식농성을 벌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