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가난하며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비롯해 일터, 교육기관 등 다양한 장소에서 신체적 폭력, 경제적 착취, 방임 같은 ‘학대’ 피해에 노출되고 있다. 학대 가해자 10명 가운데 4명은 피해자들을 돌볼 책임이 있는 시설 직원 등 장애인기관 종사자였으며, 10명 중 3명은 가족 및 친인척이었다.
23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18 전국 장애인 학대 현황보고서'에 담긴 현실이다. 지난해 각 지역 장애인권익옹호기관(신고 전화 1644-8295)에 접수된 학대 사례를 분석한 보고서로, 국가 차원에서 장애인 학대 피해를 종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8년 기관에 접수된 학대 의심사례 1835건 중 그해 말까지 1479건(80.6%)에 대해 조사를 시행한 결과 학대 피해는 889건이었으며, 학대가 의심되나 피해가 불분명한 경우 등 잠재위험 사례는 150건이었다. 학대로 인해 숨진 사망자 통계는 관련 법·제도 미비로 집계되지 않았다.
사회 활동을 시작하는 20대 장애인 피해가 211건(23.7%)으로 가장 많았으며, 30대(18.6%)·40대(17%)도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피해자 2명 중 1명(51.7%)은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형편이 어려운 처지였으며, 10명 가운데 7명은 지적장애(66%) 등 ‘정신적 장애’가 있었다. 피해자가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으로 등록된 사례(828건) 중 장애 정도가 심한 경우는 790건(95.4%)에 달했다. 피해자들은 여러 가지 학대 고통을 동시에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 등 신체적 학대(27.5%)가 가장 빈번했으며 경제적 착취(24.5%) 피해가 크다는 것이 아동·노인학대와 구분되는 특징이다.
피해자 절반 이상(56.9%)이 현재 살고 있는 집과 거주시설에서 학대를 당했으나, 이들의 자립을 돕기위한 사회적 지원은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지난해 학대 피해 889건 중 응급 조치(가해자로부터 분리해 일시 보호, 치료가 필요한 경우 의료기관 이송)가 이뤄진 경우는 107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쉼터 이용은 54건에 그쳤다. 2019년 9월 기준, 전국 학대피해 장애인 쉼터는 8곳에 불과하며 공간이 협소해 남성 장애인이 먼저 입소해 있을 경우 여성 장애인이 머물수 없는 상황이다. 일부 지역에선 쉼터도 없을 뿐 아니라 의료기관 등의 거부로 치료가 필요한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지 못한 경우도 있다. 쉼터 이동 뒤 사례 관리가 종결된 24건을 들여다보면, 원가정 복귀 및 지역사회 자립 13건이었으며 쉼터에 지속적 체류 3건, 시설 입소 7건 등으로 나타났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은종군 관장은 “피해자를 일시적으로 보호한 뒤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선 지역사회 복지관 등과 연계가 돼야 하는데 행정기관이 아닌 우리로선 역할이 제한적”이라며 “행정기관이 학대 피해자들이 지역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 체계를 촘촘하게 구축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각 기관에 접수된 학대 의심사례에 대한 조사가 100%가 진행되지 않은 데 대해 은종군 관장은 “학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에 대해선 조사가 수월하지 않았으며, 인력이 부족한 문제도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학대 조사를 담당하는 전국 17개 지역장애인권익옹호기관엔 기관장을 비롯해 상담원 2명 등 보통 4명이 근무하고 있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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