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아닌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인 홍정훈(맨 왼쪽)씨가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뒤 나와 소감을 밝히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종교가 아닌 평화적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자가 법원에서 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재판부는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를 판단하면서 종교적 신념과 비종교적 신념을 달리볼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4-2부(재판장 홍진표)는 평화적 신념을 이유로 현역 입영을 거부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홍정훈(29)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다만,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양심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병역 의무를 이행할 수 없고 병역의무 이행으로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된다고 느낄 정도라면 양심적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종교적 신념이든 비종교적 신념이든 양심적 병역거부 심사는 차별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신념이 상황에 따라 타협적, 전략적으로 변한다면 진정한 양심이라고 할 수 없”는데, 홍씨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홍씨가 과거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할지 고민했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2016년 12월 홍씨가 병역 거부를 결심하기 전의 상황을 양심 판단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또 당시 홍씨가 낸 병역거부 소견서에 담긴 홍씨 신념도 평화주의보다는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에 가깝다고 봤다.
홍씨는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3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그간의 활동은 (고려에) 없었다. 헌재 판결 취지도 (고려에) 없는 듯 (판결이) 나와서 착잡하다”고 밝혔다. 홍씨를 변호한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도 “공대 입학 초기 산업기능요원을 고민한 시기도 있었지만 병역 거부를 결심한 뒤엔 보충역 복무를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재판에서도 이를 분명히 밝혔다. 이번 판결은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판결 취지를 따른다면, 병역 거부를 비교적 근래에 결심한 사람들의 경우, 양심적 병역 거부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6월 헌재는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해 11월 대법원도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 거부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그 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 사건에서는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지만, 비종교적 신념에 의해 현역 입영을 거부한 사건에서는 무죄 판결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서울서부지법 형사2부(재판장 최규현)도 평화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오경택(31)씨 항소심에서 1심의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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