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이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여야는 물론 진보와 보수, 진보와 진보 사이에 극심한 분열을 불러온 ‘조국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검찰 수사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보고도 받지 않겠다’고 공언해온 조국 법무부 장관이 23일 집을 압수수색하던 검사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조 장관이 ‘후회한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자유한국당은 ‘해임이 아니라 탄핵감’이라며 기세를 올렸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만 알 수 있는 내용이 또 야당에 넘어갔다며 ‘야당과 검찰 동맹’ 프레임으로 맞섰다. 법무부와 검찰 사이 긴장도 높아졌다.
■ 자유한국당 “탄핵소추”-민주당 “검찰·야당 야합”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6일 대정부질문 도중 조 장관과 압수수색 검사 사이 전화통화가 이뤄진 사실이 확인된 직후, 30여분간 긴급 의원총회를 연 뒤 “압수수색 중인 검사에게 전화한 부분은 명백한 직권남용이다. 직무를 집행하면서 헌법 또는 법률을 위반했으므로 탄핵 사유도 된다”며 “고발과 탄핵소추를 추진하기로 의총에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주광덕 의원은 의총에서 “통화하면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법무부 장관을 맡기고 있는 비참한 상황”이라며 장관직 사퇴를 요구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입장문을 내고 “문재인 대통령이 끝까지 조 장관을 감싸며 해임을 거부한다면 국무위원 탄핵소추안 발의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대정부질문 직후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검찰이 야당 의원과 수사 상황을 실시간 공유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피의사실 유포 정도가 아니라 (검찰과 한국당이) 내통하고 있다는 걸 입증하는 자료”라고 비판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정치검사와 정쟁 야당의 상시적인 야합체계가 전면 가동되고 있는 건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든다. 검찰 내부에 정치권과 거래하는 어둠의 세력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박찬대 원내대변인은 “아픈 부인을 염려하는 전화통화까지 한국당이 정치 공세에 악용하고 있다. 통화가 부담스러웠다면 11시간에 걸친 압수수색을 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대정부질문 도중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장과 검찰총장은 수사팀에서 누가 특정 야당 의원과 사사건건 (수사 내용을) 공유하는지 확인하고, 응당한 조처를 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 처벌 가능성 낮지만 부적절 지적 많아
자유한국당은 조 장관의 통화가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검찰청법을 어겼다고 주장한다. 검찰을 관리·감독하는 법무부 장관이 직권을 남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형사처벌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이 해경 압수수색과 관련해 세월호 수사팀에 전화를 걸었는데, 검찰은 수사팀이 실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며 직권남용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번에도 11시간 동안 압수수색이 이뤄져 실제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직권남용은 미수죄도 없다.
하지만 조 장관 본인도 인정했다시피, 통화가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많다. 김한규 전 서울변회 회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검사인사권이 있는 법무부 장관의 전화 한 통은 상대방인 검사에게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경험칙상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며 “더구나 장관 자택을 압수수색 중이었는데, 가장으로서 당연히 걱정되겠지만, 가족하고만 통화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2012년 12월 국정원 댓글공작 수사 때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게 직접 외압성 전화를 한 사건에 대해 조 장관은 2013년 5월27일 자신의 트위터에 “증거인멸 우려가 매우 높은 김용판, 구속수사로 가야겠다”며 김 전 청장을 구속수사해야 한다는 취지의 트위트를 올린 바 있다.
■ 법무부-검찰 충돌도 재연
박상기 전 장관 시절 압수수색 사전 보고 여부를 놓고 충돌했던 법무부와 검찰도 이날 다시 충돌했다.
‘통화 논란’ 뒤 법무부는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배우자의 전화를 건네받은 압수수색 관계자에게 ‘(배우자의) 건강 상태가 너무 안 좋은 것 같으니 놀라지 않게 압수수색을 진행해달라’고 남편으로서 말한 것이 전부였다”고 해명했다. 부부 사이 인간적 도리를 했을 뿐 압수수색(수사)에 영향을 끼치는 언사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도 곧바로 이를 반박하고 나섰다. “와이프가 몸이 좋지 않고 아들과 딸이 집에 있으니 신속하게 압수수색을 진행해달라는 취지였다”는 내용이었다. 또 “신속하게 압수수색을 진행해달라는 취지의 말씀을 여러번 했다. 전화를 받은 검사는 ‘그런 과정에 심히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도 했다. 신속한 진행을 주문했다에 방점이 찍힌 셈인데, 이는 사실상 수사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란 것이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조 장관은 두가지 신분이 있었다. 압수수색 대상이 된 집 주인이라는 점과 법무부 장관 조국이라는 점”이라며 “전자만 생각하면 문제가 안 되지만, 법무부 장관 자격으로 보면 절대 해서는 안 될 전화를 했다. 공사 구분을 못 하는 모습을 다시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김원철 정유경 신지민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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