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월26일 새벽 영장이 기각된 뒤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첫 재판에서 재판부가 “검찰 공소장에 장황한 표현이 많고, 모순되는 내용도 있다”며 이례적으로 검찰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범죄 혐의 성립에 필수인 공범을 기소도 하지 않았다며, 균형 잃은 기소권 행사에도 일침을 놨다.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는 김 전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재판부는 기소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김 전 장관 지시로 한국환경공단 전병성 전 이사장의 사표 제출을 종용한 박천규 전 차관을 언급하면서 “피고인들이 텔레파시를 쓴 것이 아니라면 박 전 차관의 행위 없이는 범행 성립이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박 전 차관에 관한 아무런 형법적 평가가 없다”며 “그가 피고인들과 공모한 것인지 여부를 (검찰이)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박 전 차관의 행위 없이는 (김 전 장관의) 업무방해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데, (박 전 차관은) 직권남용 피해자로 돼 있다. 박 전 차관이 피해자인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닌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박 전 차관은 김 전 장관 등의 지시를 받아 청와대가 추천한 국립공원공단 이사장 후보에게 면접 심사 최고점을 줬는데, 어떻게 김 전 장관의 직권남용 ‘피해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해당 재판부가 진행 중인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사법농단 사건과 비교되기도 했다. 임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아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임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과의 공모가 인정돼 ‘공동정범’으로 기소됐다.
공소장 내용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재판부는 공소장 화면을 법정에 띄워 “따옴표가 계속 나온다. 대화 내용을 그대로 쓴 것인데, 판사 생활 20년 하며 이렇게 상세하게 대화 내용이 나오는 공소사실을 본 적이 없다”며 “공소사실 자체가 지나치게 장황하고 산만하다. 피고인들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향으로 기재됐다”고 지적했다.
한 수사 관계자는 “준비기일이기 때문에 재판부는 공소장만 볼 수 있다. 검사도 법리 검토를 면밀히 해서 쓴 공소장이기 때문에 재판부를 납득시키기 위한 사건 맥락을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재판부 지적에 별다른 반박이나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재판부 의견을 면밀히 살펴 대응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두 피고인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