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이 시행된 첫날인 지난 10월5일 홍콩 완차이 지역에서 정부 조처에 반발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행진을 하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 지난 9월4일 홍콩 정부가 저항을 불러온 ‘송환법’을 철회했지만 홍콩 시민의 저항은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시민들은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이들의 조건 없는 석방, 행정장관 직선제 등 5대 요구 전면 수용을 요구하고, 정부는 실탄 발사 허용 등 진압의 수위를 높여왔다. 최근엔 잠들어 있던 복면금지법을 꺼내 들었다. 장정아 인천대 교수(문화인류학)가 ‘복면금지법’의 금지를 뚫고 저항하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뜨겁던 홍콩의 올해 7월, 복면과 마스크를 쓴 시위대 사이에서 홀로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드러내며 충격을 준 이가 있다.
홍콩 역사상 처음으로 의회에 난입해 들어간 시위대에 경찰이 선포한 무력 해산 시한이 임박하여 긴장이 고조된 순간, 한명이 갑자기 마스크를 내리고 다 같이 남자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그의 신분이 밝혀져 체포될까 걱정되어 마스크를 쓰게 했지만, 그는 곧 다시 내리고 말했다. “내가 마스크를 벗은 건, 우리 홍콩인은 더 이상 패배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면 10년을 지는 것이고, 홍콩 시민사회는 이제 끝없이 짓밟힐 것이다.” 그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말하길, 마스크를 벗은 이유는 시위대가 폭도로만 기억되지 않기를, 자신들의 파괴행위만 기억되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는 스스로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폭도라는 이름에 저항했다.
그리고 이제 복면과 마스크를 벗으라고 명령하는 이들이 있다. 홍콩에서 10월4일 발표되어 5일 0시부터 시행된 복면금지법은, 불법은 물론이고 합법적 집회와 시위에서도 복면이건 마스크건 페이스 페인팅이건 얼굴 가리기를 금지한다. 복면이나 마스크를 쓴 이들을 언제 어디서든 경찰은 불러세워 벗으라고 요구할 수 있고,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6개월 감금된다. 복면과 마스크를 쓴 폭도들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며 의회도 거치지 않고 정부가 긴급히 시행한 법이다. ‘폭도’는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
그렇다면 경찰은 시민들과 얼굴을 마주하길 원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송환법 반대로 시작된 이번 시위 과정 내내 경찰은 시민들의 얼굴을 지우고 그들을 비인간화하고 있다. 시위대는 끊임없이 바퀴벌레라고 불린다. 바퀴벌레는 과거에 유대인에게, 그리고 르완다에서 후투족에게 붙여졌던 이름이다. 9월에는 노란 옷과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가 뒷골목에서 수십명의 경찰에게 구타를 당했다. 기자회견에서 경찰은 ‘노란 물체를 걷어찼을 뿐이고 그 물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시민들은 얼굴이 지워지는 동시에 얼굴을 드러내도록 요구받고 있다.
복면금지법은 어떻게 의회도 거치지 않고 4일 발표되자마자 그날 밤 시행될 수 있었을까? 그건 거의 100년 전 만들어진 긴급법 덕분이다. 이 긴급법은 홍콩의 식민 역사가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질기게 이어지는 식민 역사
“긴급법령을 추진한 것은 정부가 자신감을 상실했고 두려움과 낙담으로 차 있음을 보여준다.”
한 신문의 헤드라인이다. 이것은 현재의 중국 통치하 홍콩 정부에 대한 말이 아니다. 52년 전 영국 식민통치하에 있던 홍콩 정부가 폭동에 대응하고자 시행한 긴급법을 비판하는 친중파 신문의 헤드라인이다. 긴급법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22년 선원 대파업 때였다. 그리고 45년 뒤 1967년 긴급법은 다시 발동되었다. 당시 홍콩은 정부와 경찰의 부패와 통치방식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있었고 서민의 생활도 어려웠다. 플라스틱 조화 공장에서 일어난 노사분규는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갈등이 심해졌고, 중국 본토 문화대혁명의 영향 속에 마침내 총과 폭탄이 난무하는 폭동으로 발전하여 사망자 51명, 부상자 832명을 내며 8개월 만에 끝났다. 폭동에 대응하려고 정부는 긴급법을 발동하여 많은 조례를 만들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려고 1948년 만든 공안조례도 67년 폭동 뒤 강화되어, 폭동죄 처벌 형량은 최장 2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났다. 지금 홍콩에서 시위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공포는 바로 이때 10년으로 늘어난 폭동죄 형량이다. 이처럼 홍콩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긴급법과 폭동죄는 모두 영국 식민정부가 주로 좌파의 폭동을 막고자 만든 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홍콩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무수한 사상자를 낸 67년 폭동을 주도하며 ‘영국 박해 반대투쟁위원회’를 이끈 인물은 홍콩의 중국 반환 뒤 훈장을 받았다. 반면 이제 식민지가 아닌 홍콩의 길거리에서 싸우는 많은 청년은 폭동죄로 기소되고 폭도로 낙인찍히고 있다. 또 현재 시위대를 강경진압하는 홍콩 경찰 속엔 영국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초반 평화 시위에 최루탄 총을 쏘며 강경진압을 주도한 것도 영국 출신의 경찰 지휘관이고, 경찰이 집단 구타한 시민에게 ‘노란 물체였을 뿐, 그게 배낭인지 사람인지 조끼였는지 모르겠다’고 하여 공분을 산 경찰도 영국 출신이다. 이렇게 식민 역사는 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 좌파를 억누르고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고자 만든 법령들은 홍콩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된 현재에도 중요한 무기로 활용된다.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던 운명은 얼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스크를 쓴 시위대가 홍콩 의회인 입법회에 지난 7월1일 진입했다. 송환법 철회를 요구하며 홍콩 역사상 처음 의회를 점거한 사건이었다. 이날 경찰의 무력 해산이 임박하자 누군가 마스크를 벗고 “여기를 지키자”고 호소했다. 홍콩/EPA 연합뉴스
마스크를 벗고 의회 앞에서
이번 시위 과정에서 만든 창작곡 ‘홍콩에게 영광을’이란 노래 영상의 여러 버전 중 한 버전에서 젊은이들은 다 같이 방독면을 쓰고 최루탄 속에서 노래를 부른다. 방독면과 복면, 마스크를 쓴 이번 시위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얼굴을 드러내고 싶은 것은 바로 시위대 자신이다. “언젠가 마스크를 벗고 의회 앞에서 만날 수 있기를!” 이것은 이번 시위의 슬로건 중 하나이다.
홍콩 시민들이 원래부터 얼굴을 가리고 시위를 한 것은 아니다. 5년 전 지도자 직선을 요구하며 도로를 점령했던 우산운동 때만 해도 얼굴을 다 드러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시위 참가 사진도 많이 올렸다. 그들이 이번 시위 초반부터 얼굴을 가린 이유는, 우산운동 해산 뒤 5년 동안 계속 이뤄진 대규모 체포와 기소 때문이다. 몇년이 지나서도 언제 잡혀갈지 모르니 얼굴을 드러내선 안 되고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철저히 익명으로 남아야 한다는 공감대는 지난 5년 동안 정부가 준 교훈을 흡수한 결과였다.
역사적으로 홍콩인들에겐 정치에 대한 무력감과 두려움이 컸다. 그 또한 식민 역사가 남긴 아픈 유산이다. 식민지로서 정치적 자유에는 한계가 있었고, 67년 폭동은 정치행동에 대한 두려움을 낳았다. 냉전시대 공산 중국을 의식한 영국은 홍콩에게 민주를 결코 안 주는 대신 번영과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를 만들어냈다. 67년 폭동에 놀란 식민정부는 사회를 크게 개혁했지만 여전히 정치적 권리와 자유는 한참 부족했다. 그러나 그 권리와 자유를 직접적 정치행동으로 얻어내야 한다는 인식보다는, 안정과 질서를 해치는 행위에 대한 반감이 최근까지도 홍콩인들의 지배적 정서였다.
그러던 홍콩인들이 이제 매일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홍콩 열차와 지하철이 역사상 최초로 전면 운행 중단되기도 했다. 정치적 행동에 대한 냉소와 무력감은 깨졌다. 작은 변화 하나도 직접 행동으로 얻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누구도 다른 이를 대표하지도 이끌지도 않는 이번 시위에서 시민들은 오롯이 각자의 얼굴로 참여하고 있다.
‘얼굴의 현현은 윤리적 호소이다. 얼굴은 나에게 명령하는 힘으로 다가온다. 이 힘은 강자의 힘이 아니라 상처받을 가능성, 무저항에서 오는 힘이다.’ 타자의 얼굴이 갖는 힘을 역설했던 철학자 레비나스의 말은 지금 홍콩의 상황에선 너무나 비현실적인 책 속 구절에 불과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현실에선 강제로 복면과 마스크가 벗겨지며 드러나는 타인의 얼굴은 상대에게 윤리적 죄책감을 갖게 하기는커녕 공권력 행사의 무력한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러나 얼굴은 힘이 없지만 힘이 있다.
준엄한 질문의 시작
얼굴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순간은 매번 파괴력을 지닌다. 의회 사수를 호소하며 마스크를 벗은 젊은이는 이번 시위 과정에서 가장 큰 충격을 주었다. 8월31일 경찰이 지하철 안에서 무차별 공격을 하여 많은 시민이 다치고 역이 폐쇄되자 내려진 철창에 매달려 ‘나를 때려도 좋고 쏴도 좋으니 제발 들어가 저들을 구조하게 해달라’고 울부짖던 구조대원은 끝내 진입이 거부당하자 주저앉아 얼굴을 드러내고 울었다. 7월17일 지팡이와 휠체어에 기대어 온몸에 약을 바르고 나와 시위대를 지지하는 장엄한 행진을 한 ‘흰머리 부대’ 은발족은 얼굴을 드러내고 흰머리를 휘날리며 걸었다. 속속 체포되는 10대 소년 소녀의 얼굴도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그저께 한 대학생은 구치소의 가혹행위를 고발하며 대학 총장에게 “내가 용기내어 마스크를 벗으니,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해줄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마스크를 벗었다.
복면을 벗으라는 요구는 얼굴을 가린 이들을 통제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얼굴 없는 이들은 시위 현장에만 있는 게 아니라 도처에 존재하며 물처럼 흐르고 있다. 수십개 정부 부문의 공무원과 지하철역 차장, 승무원을 비롯한 온갖 업종의 홍콩인 수백명은 이름을 가린 신분증으로 인증샷을 찍어 시위대 지지를 표시하는 역사상 전례없는 광경을 만들어냈다. 얼굴 없는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시위대가 무사히 집에 갈 수 있게 곳곳에 갈아입을 옷을 놔두고, 누구든 집까지 차로 태워다주려고 여기저기 차를 대고 밤늦게까지 기다린다.
그들이 모두 얼굴을 드러낸다면 가장 두려운 것은 누구일까? 분명한 건, 얼굴을 드러내게 함으로써 그들을 순응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제 준엄한 질문이 시작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은 타인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변화시키는가? 그 얼굴들과 마주칠 준비가 정말 되어 있는가? 이 질문들은 이번 홍콩 시위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아 답을 기다릴 것이다.
장정아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문화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