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달리는 조사관>의 원작 소설 작가인 송시우 국가인권위원회 정책교육국 사회인권과 주무관.
케이블채널 오씨엔(OCN)에서 방영 중인 <달리는 조사관>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조사관을 주인공으로 한 첫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2015년 발간된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했다. 원작자는 실제 인권위 조사관을 역임한 송시우(필명) 인권위 정책교육국 사회인권과 주무관이다. 송 주무관은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지난 10일 <한겨레>와 만난 송 주무관은 인권위가 출범하고 5개월 뒤인 2002년 4월 조사관으로 특채됐다. 이후 5년 동안 조사관으로 일한 뒤, 지금은 정책교육국에서 법이나 정책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면서 인권과 윤리 등에 대해 고민했고, 여성인권 관련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인권을 실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송 주무관은 어릴 때 어린이용 ‘셜록 홈스’를 읽었고, 중학생 때 아버지가 사준 애거사 크리스티 추리소설에 미친 듯이 빠졌다. 2000년대 초반에는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 등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 번역본들을 읽었다. 이런 독서 경험이 제2의 직업으로 추리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송 주무관은 “주중엔 인권위 일을 하고 주말엔 글을 쓴다”며 “주말에 글 쓰다가 주중이 되면 몰입한 게 깨져서 괴롭기도 했다”며 웃었다.
<달리는 조사관>은 송 주무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인권증진위원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섯 편의 연작으로 꾸몄다.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겪은 민간인 사찰과 연쇄살인범, 허위 자백과 공권력 남용 등의 사건을 다뤘다. 송 주무관은 얼굴을 붉히며 “드라마가 방영되자 주변 인권위 동료들에게 신기하고 고맙다는 응원을 많이 받았다”며 “대본을 미리 봤는데도 제가 쓴 글이 대사로 나와 몸이 오그라들고,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송 주무관은 소설 속 4명의 조사관 중 본인과 가장 가까운 캐릭터로 ‘한윤서 조사관’을 꼽았다. 한 조사관은 행동파 검사 출신 ‘배홍태 조사관’과 달리 냉정하고 신중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인물이다. 드라마에서는 이요원씨가 그 역할을 맡았다. 그렇다면 그가 실제 조사관으로 한 일 중 가장 보람찬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만 40살 이하로 규정해온 교육공무원 임용시험 응시연령 제한을 폐지한 일”이라며 “권고를 해도 수용이 될까 확신이 안 섰는데, 사회가 변하는 것을 보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10층 배움터에서 만난 정은영 침해조사국 군인권조사과 조사관, 한필훈 차별시정국 성차별시정팀 조사관, 김명희 부산인권사무소 조사관(왼쪽부터).
그렇다면 실제 조사관들의 삶은 어떨까.
전국 인권위 직원 224명 가운데 조사관은 80명. 이 80명이 1년 동안 처리하는 평균 사건 수는 약 1만건에 이른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피진정인이 조사관을 향해 “당신이 경찰이야? 검찰이야?”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실제 조사관들은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현장 조사에 어려움을 겪는다. 경력 7년인 정은영 침해조사국 군인권조사과 조사관은 병사 사망사건 때문에 철책 인근에 있는 전방부대를 조사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두번이나 부대에 조사를 하러 갔지만 비협조적이어서 병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요청했는데, 군인들이 설문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우르르 나가며 ‘이게 단합이야 역시’라고 말했다”며 “조사에 협조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11년 경력의 한필훈 차별시정국 성차별시정팀 조사관은 지난해 검찰 내 성희롱 문제를 조사했던 일을 꺼냈다. 그는 “검찰이 개인정보라며 인사 기록을 주지 않아 언론 기사를 뒤져 피해자를 찾아냈다”며 “검찰이 정보를 주지 않아도 200만원 과태료만 내면 인권위가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10층 배움터에서 김명희 부산인권사무소 조사관, 한필훈 차별시정국 성차별시정팀 조사관, 정은영 침해조사국 군인권조사과 조사관(왼쪽부터)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수사권이 없어도 검찰과 경찰이 하지 못하는 인권위 조사관만의 영역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송 주무관은 “인권위가 검·경처럼 수사권을 갖게 되면 또 하나의 수사기관 될 뿐”이라며 “또 하나의 권력기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한 조사관은 “인권위가 강제권을 갖게 되면 법률 심사대상이 되고 사안을 법률적으로 엄격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법보다 한발 더 나아간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집단으로 ‘정신 장애인’을 꼽았다. 송 주무관은 지난 8일 인권위를 통해 ‘공공임대주택 임차인의 강제퇴거’를 핵심 내용으로 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 표명했다. 경력 8년의 부산인권사무소 김명희 조사관은 “조현병 등 정신장애인들은 사회적 편견이 심하고, 인권침해 부분에서도 의사 주체로 보지 않기 때문에 자기주장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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