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첫 재판이 열렸다. 이 부회장 쪽은 ‘양형’을 줄이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검찰과 특검은 ‘감형’을 막기 위해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입증할 추가 증거를 내겠다고 맞섰다. 양쪽이 팽팽한 가운데, 재판부가 법정에 출석한 이 부회장을 향해 ‘경영 체제 혁신’을 당부하는 듯한 말을 건네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등 5명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이 부회장 쪽 변호인은 “대법원 판단을 존중해, 달리 (유·무죄를) 다투지 않겠다. 주로 양형을 다투겠다”고 밝혔다. 이날 변호인은 집행유예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재판 기록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국정농단에 연루됐지만 집행유예가 확정된 신 회장의 사례를 들어 ‘양형 형평성’을 강조하겠다는 전략을 내비친 것이다.
반면, 특검과 검찰은 경영권 승계 작업의 실체를 더 탄탄히 증명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사기 의혹을 수사하며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 작업을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이 자료를 통해 ‘그룹 안에 승계 작업이 있었고 이 부회장의 이익을 위해 무리하게 진행됐는데, 그 과정에 박 전 대통령의 우호적 조처가 필요했다’는 점을 증명할 것으로 보인다. 특검 쪽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가 확보됐다”고 설명했다.
경영권 승계 작업은 이 부회장 사건의 핵심 쟁점이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제3자 뇌물 혐의는 ‘이건희→이재용’이라는 경영권 승계와 이를 위한 부정한 청탁을 건넸다는 대전제 위에 서 있다. 대법원은 1·2심의 엇갈린 판단을 정리하면서 이런 부정한 청탁과 승계 작업을 인정한 바 있다. 특검 쪽은 추가 증거 제출로 이 부회장이 사익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뇌물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예정이다. 사익 추구가 명확해지면 집행유예 가능성은 더 작아진다. 특검 쪽은 “신동빈 회장 사건은 (살펴볼) 필요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의 삼성 뇌물 사건 기록을 요청하겠다”고 변호인에 맞섰다.
한편, 이날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재판이 끝날 무렵 이 부회장 쪽을 향해 이례적인 당부의 말을 남겼다. 정 부장판사는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같은 범죄가 재발할 것”이라며 “재벌 체제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 등으로 우리 국가 경제가 혁신형 모델로 발전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 엄중한 시기에 재벌 총수는 재벌 체제 폐해를 시정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1993년 당시 만 51살의 이건희 삼성그룹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이른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똑같이 만 51살이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재판장 발언 이후 ‘삼성이 윤리 경영 시스템을 재정비하면 형을 감경해 주겠다’는 메시지를 준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장의 발언은 양형 사유를 말해주는 듯한 느낌을 줬다”고 지적했다. 고한솔 임재우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