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한 사람이 잘못된 유죄 판결을 받는 이유와 과정을 분석한 오판 연구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드물다. 특히 고문 등 폭력을 가하지 않아도 피의자가 허위자백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심리적 수사 기법으로 얻는 피의자 신문조서에서도 무고한 피의자가 허위자백을 할 잠재적 위험이 있다. 그림 조재석 작가
1988년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 복역한 윤아무개(당시 22살)씨는 20년 전 항소심 재판에서도 “범행을 허위진술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자백 내용이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부분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조사받는 이아무개(56)씨가 8차 사건도 자신의 범행이라고 밝히면서 윤씨는 재심을 준비 중이다. 결백한 사람이 육체적 고문이나 정신적 질병에 시달리지 않아도 허위자백을 하는 일은 드물지 않게 발생하지만 경찰·검사·판사 등 형사 사법 체계 관련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면에 무고한 피의자들은 검찰·법원 등이 자신의 무고함을 나중에 밝혀줄 것이라고 믿으며 고통스러운 조사실에서 당장 벗어나기 위해 허위자백을 한다. ‘증거의 왕’이라 불리는 자백의 허술한 민낯을 들여다본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아무개(56)씨가 10여차례의 화성사건과 더불어 추가 살해까지 진술하면서 과거에 이 사건들의 범인으로 몰렸던 용의자들이 허위자백 했다고 잇따라 진술하고 있다.
1988년 9월16일 여중생(당시 14살)이 살해된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을 복역한 윤아무개(당시 22살)씨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허위자백 과정을 설명하며, “잠을 안 재우고 쪼그려뛰기를 사흘간 했다. 발로 걷어차고 가슴과 엉덩이 쪽을 많이 맞았다. 조사 과정에서 ‘너 하나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씨가 저질렀다고 밝힌 1991년 1월16일 청주 여고생 강간치사 사건의 피의자로 수사받았던 박아무개(당시 19살)씨의 경험도 비슷하다. 경찰이 잠을 재우지 않으면서 ‘감옥에서 몇년 살다 나오면 된다’고 회유하며 그를 몰아세웠다. 박씨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만 괴롭힘을 당하고 싶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범행을 다 했다고 (거짓) 시인했다”고 말했다.
오래전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됐던 이들은 경찰의 물리적 폭력 탓에 허위자백을 했다고 밝혔지만, 심리적 수사 기법만으로 결백한 사람들이 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범행을 저질렀다는 자백은 유죄를 나타내는 지표라는 게 널리 알려진 오해다. 26일 2019년 한국법심리학회 추계학술대회(‘피의자 수사면담과 허위자백’)에서 발표되는 충북대 인간심리연구소의 ‘허위자백 및 허위자백 위험요소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허위자백 인식) 논문을 보면, 응답자 10명 중 9명이 “자백은 유죄를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90.6%)이기에 “누군가 자백했다면 그는 유죄일 것”(91.7%)이라고 밝혔다. 특히 4명은 “자백을 했다면 (수사기관이) 다른 증거들을 계속 찾을 필요가 없다”(37.6%)고도 했다.
자백이 중요하게 여겨져 경찰이 피의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해 자백을 받아내는 데도 너그러운 편이었다. ‘허위자백 인식’ 논문에서 응답자들은 “경찰이 자백을 얻기 위해 용의자의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를 고의적으로 거짓말”(89.6%)하며 “강압적 신문 기법이 허위자백을 유도하지만 훨씬 더 많은 진실된 자백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있다”(62.5%)고 했다. 나아가 “경찰은 자백을 얻기 위해 물적 증거나 목격자가 있다고 거짓말해도 괜찮”(63.5%)으며, “진실한 자백을 이끌기 위해 가끔 거짓말이나 강압 등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기법들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65.6%)는 데도 긍정적이다. 이는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허위자백 하는 일이 매우 드물다고 추론하기 때문이었다. 응답자 10명 중 9명은 “내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에 대해 자백하지 않을 것”(부동의 9.4%)이며,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허위자백 한다”(부동의 4%)고 생각했다.
하지만 1930년대 미국의 오판 실증연구가 시작된 이후 허위자백은 수없이 드러나 오판의 주요 원인으로 허위자백을 꼽는 데 이견이 없다. 2019년 2월 기준 디엔에이(DNA) 증거분석 등 객관적 사실로 무죄가 밝혀진 ‘면죄 사건’ 석방자(2400명) 가운데 12%(291명)가 허위자백을 해서 유죄가 된 것으로 드러났다. 오판의 다른 원인인 ‘목격자 오인 지목’(30.8%), ‘부적절한 과학적 증거’(22.8%) 등은 타인에 의한 것이었다.
특히 허위자백은 지적장애인 등(69%)과 18살 미만 미성년자(36%)에게서 그 비중이 두드러진다. 또 살인사건과 여론의 관심이 큰 사건에서 오히려 허위자백은 많이 일어난다. 면죄 사건 가운데 살인사건 피의자(958명)만 따져보면 27%(217명)가 허위자백이 유죄의 주요 원인이었고, 역시 피의자가 18살 미만 미성년자(44%)이거나 지적장애 등 정신적 문제(81%)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 미시간대 로스쿨 교수인 새뮤얼 그로스는 “살인 등 중요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수사관에게 다양한 압력이 가해진다. 피해자 유족의 항의에다 언론의 관심도 집중된다. 강압적 수사 기법이 사용되고 검사도 사회적 관심 때문에 무혐의 처분을 하기 어려워져 약한 증거로도 기소하는 경향이 있다. 중요 사건에 오류의 요인이 더 많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미국 면죄자 291명 허위자백
우리나라에는 아직 관련 통계가 없지만 허위자백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독일 등과 달리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가 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받아 자백 위주의 수사가 훨씬 보편적으로, 그만큼 허위자백 가능성이 커진다. 2017년 형사사건에서 ‘부인’(9.6%)하거나 ‘묵비’(0.1%)를 행사하는 피의자는 10%를 넘지 않았다. ‘자백’(40.4%)과 ‘일부 자백’(12.8%)이 절반을 넘었고 ‘미상’(37.1%)도 대부분 자백으로 분류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많게는 피의자 10명 중 9명이 자백하는 셈이다.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자백을 받기 위해 경찰이 피의자를 폭행하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 그런데도 허위자백이 여전히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미성년자, 지적장애인 등 취약한 계층이 있다. 이들은 피암시성(다른 사람의 말과 태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생각, 의견, 태도, 행동을 바꾸는 현상)이 높아 심리적 압박을 받는 신문 상황에서 허위자백을 할 위험이 높다. ‘보령 여중생 폭행치사 허위자백 사건’이 그렇다.
2007년 5월30일 밤 9시께 충남 보령시 남포면에서 어머니를 찾아 나섰던 둘째딸(당시 14살)이 실종됐다. 경찰은 가족을 면담하다가 10살, 8살인 두 동생에게 중요한 진술을 확보한다. “큰누나가 작은누나를 아빠 방에 불렀는데, 잠시 후 쿵 하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작은누나가 죽은 거 같았다. 30분 후 엄마가 와서 작은누나를 싣고 나갔다.” 경찰이 이 진술을 토대로 첫째(당시 17살)를 데려와 피의자 신문을 하자 “말다툼 끝에 동생을 밀쳐서 벽에 머리를 부딪혀 의식을 잃었고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 숨겼다”고 자백했다. 그런데 실종됐던 둘째가 20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검찰이 거짓자백을 한 경위를 조사했지만 경찰의 가혹행위는 없었다. 아이들은 왜 허위진술을 했을까. 피의자로 조사받은 첫째는 “당시 집안에 큰일이 났고, 주변 마을에 온갖 흉흉한 소문이 다 나 있었다. 그날 엄마 찾아보라고 (실종된) 동생을 내보냈던 죄책감에 괴로웠다. 거짓말한 다른 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허위) 자백했다”고 했다. 그는 “설령 잘못되더라도 동생이 돌아오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 가족을 면담했던 조은경 동국대 교수(법심리학)는 “형사들이 유도질문과 반복 질문을 통해 그들이 생각한 가설과 부합하는 방향의 진술을 피암시성이 높은 아이들에게 (허위진술로) 얻어냈다”고 진단했다. 미성년자의 경우 이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경찰 조사 때 보호자 도움이 필수적이지만, 이들은 어린 초등학생인데도 보호자 없이 경찰과 면담했다.
조사실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백뿐
성인이 허위자백을 하는 경우는 강압적인 심리 수사 기법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수사 과정은 엄청난 압박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된다. 이렇게 조사를 받다 보면 어느 순간 한계점에 이르게 된다. 경찰의 수사 기법은 피의자가 이 한계점을 넘어 자백하도록 설계돼 있다. 피의자가 신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자백하는 것뿐’이라고 깨닫도록 심리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심리 신문 기법은 미국 ‘리드기법’으로 ‘최소화’와 ‘최대화’ 전략이 유명하다. 최소화 기법이란 경찰이 범죄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나 공범과 같이 다른 사람에게 돌리거나 상황 탓을 하며 변명거리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최대화 기법은 피의자를 겁주려고, 범죄의 심각성을 과대포장하거나 목격자나 디엔에이 증거가 발견됐다고 거짓말한다. 피의자가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면 가혹한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암시도 한다.
이 상황에서 피의자는 이익과 비용을 따지게 된다고 한다. 영국 심리학자 기슬리 그뷔드욘손(굿존슨)은 “자백을 하는 것이 범행을 부인하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피의자는 자백을 하겠다는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때 결백하다는 점이 오히려 허위자백의 위험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결백한 피의자는 나중에 변호사나 검사, 판사 등이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주리라 믿으면서 당장 경찰의 신문 상황이 주는 고통을 끝내기 위해 허위자백을 결심한다는 것이다. 검찰·법원 등 국가의 형사 사법 체계가 무고함을 밝혀줄 것이라고 신뢰하는 피의자일수록 허위자백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허위자백의 덫에 빠진 경찰도 있었다.
1993년 11월29일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근무하던 현직 경찰(순경)의 애인이 여관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함께 투숙했던 그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고, 그는 동료 경찰의 설득 끝에 범행을 자백했다. 하지만 검찰에 와서 범행을 부인한다. 폭력은 없었지만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면하려면 자백해야 한다는 동료의 회유에 허위자백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1심과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뒤늦게 진범이 잡히면서 자백은 허위로 밝혀지고,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경찰의 심리적 수사 기법 때문에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며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피의자가 설득되는 경우도 있다. 첫번째 단계는 경찰이 피의자가 자신의 결백함을 의심하도록 하는 것이다. 살인사건에서 피의자 지문이나 목격자 등 피의자에게 불리한, 날조된 증거가 나타났다고 경찰이 들이댄다. 결백한 피의자는 경찰이 거짓말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순진하게 신뢰한다. 그래서 자신이 결백하다는 생각과 자신의 유죄를 틀림없이 증명하는 증거가 있다는 경찰의 말이 진실일 것이라는 믿음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다. 그때 경찰은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지만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가장 흔한 것은 범죄를 저지른 충격적 경험 탓에 피의자 스스로 기억을 억압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피의자는 경찰의 설명에 설득되고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을 것 같다고 믿게 된다.
허위자백은 허위자백을 부른다
허위자백이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확산효과 탓이다. 한 사람이 허위자백을 하면 다른 결백한 사람까지 공범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허위자백 사건의 30%가 여러명의 무고한 피의자가 자백한 경우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수사관이 허위자백을 한 피의자가 공범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며 강하게 추궁하면, 자포자기 상태인 피의자가 결백한 제3자를 공범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안성 강도살인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9년 5월19일 새벽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원룸 뒤편에서 30대 남성이 온몸을 구타당한 채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피해자는 20~30대 남성 3명이 나타나 금품을 요구했는데 없다고 하자 폭행했다고 진술한 뒤 사망했다. 당시 범행 현장에는 담배꽁초 4개가 발견됐는데 유전자를 채취해보니 인근 고교 재학생 송아무개(당시 17살)군으로 밝혀졌다. 송군은 친구들과 퍽치기를 했다고 자백하고 공범으로 친구 2명을 지목했다. 이들도 체포돼 자백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 결과 범행 장소는 고교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는 곳으로 확인됐다. 또 이들은 범행 당시 서로 통화한 사실이 없고, 친구 중 한명은 범행 시간에 인터넷에 접속해 글을 게시한 것이 밝혀졌다. 결국 검찰은 이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처럼 허위자백은 수사·기소·재판 단계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수사관, 검사, 판사 등 형사 절차 전문가들이 ‘스스로 행하지 않은 범죄를 자백할 리 없을 것’이라는 그릇된 환상을 고집하면서 허위자백의 위험을 무시하면 결백한 피의자를 유죄로 오판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기수 전남대 교수(해양경찰학)는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나타내는 허위자백의 징표로 다섯가지를 제시했다(‘수사과정에서 나타나는 허위자백의 징표’·2016년). 첫째, 일관성이 부족하다. 허위자백 사례를 분석해보면 대부분 자백의 내용이 조사를 거듭하면서 계속 변하다가 마침내 범행의 객관적 정황과 맞는 수준으로 ‘발전’해나간다. 그사이 피의자는 자백과 부인을 여러차례 번복한다. 둘째, 물증이 없다. 자백이 진실하다면 직접적 물증을 확보하는 게 수순이다. 하지만 허위자백 사례에서는 자백이 구체적인데도 이를 증명할 물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7년 수원 노숙소녀 상해치사가 그랬다. 범죄 현장에서 피의자와 일치하는 디엔에이나 족적 등이 발견되지 않았다. 또 피해자와 함께 이동했다는 경로에는 수십대의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녹화돼 있었는데 피의자의 모습이 찍혀 있지 않았다.
셋째, 자백 내용과 공범·참고인 진술이 어긋난다. 특히 자백 초기에 공범들을 분리해서 조사할 때 자백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넷째, 자백 내용과 객관적 상황이 다르다. 자백을 받아낸 경찰은 ‘터널비전’(터널 속에서 보이는 좁은 시야에만 집중되는 현상)에 빠져 무죄 증거를 무시하고, 유죄 증거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발 떨어져서 보면 자백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객관적 상황이 상당히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수사 과정에서 생겨나는 의혹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진정한 자백은 수사 현장에서 생겨난 의혹을 시원하게 풀어주거나 수사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특징이 있다. 이를 ‘비밀의 폭로’라고 하는데 허위자백에서는 그런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수사 현장에서 10년 넘게 수사 실무를 맡아온 이기수 교수는 “자백은 통상 ‘내가 했다’는 범죄 시인 후에 범죄의 세밀한 내용을 진술하는 ‘구체화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 단계에서 수사를 통해 밝혀진 객관적인 사실과 불일치하는 내용이 많이 나타나는데 그 징표를 포착해 자백의 진위를 가려내야 한다”고 했다.
피의자 신문 전 과정의 녹화 의무화
허위자백을 방지할 제도적 방안으로는 피의자 신문 전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자녹화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있다. 현재 피의자 신문조서는 피의자의 모든 진술을 그대로 기록하는 게 아니다. 일부만 취사선택하는 방식이라 수사관의 선입견이나 심증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 ‘피의자 신문조서의 왜곡 유형과 정도에 관한 연구’(2014년)에서 피의자 10명의 피의자 신문조서와 영상녹화물을 비교해보니, 문답의 양적 차이가 5배나 났다. 평균적으로 조서의 물음은 51.5개인 데 반해 영상의 물음은 248.5개였다. 조서와 영상의 답변도 각각 47.9개와 248.1개로 차이가 컸다. 실제로 물은 대로 기록하지 않는 것이다.
왜곡 빈도와 실태를 따져보니 영상으로는 1시간당 30.4회, 피의자 신문조서로는 1쪽당 4.2회의 왜곡이 발생했고, 문답전환(34%)과 문답생략(33%)이 빈번했다. 예를 들면 방화죄로 피의자 신문을 받은 남성(41살)의 조서를 보면, “문: 현관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나요? 답: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돼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피의자의 답변은 “아니, 뭐 어떻게 들어요? 솔직하게 불이 나가지고 있는데 현관문을 열어달라는 소리를 들었냐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였다. 피의자가 현관문을 열어달라는 소리를 듣지 못한 이유를 불이 나서 경황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는데도 수사관이 이를 조서에서 생략한 것이다.
문답전환은 수사관이 특정한 내용을 언급(“거기에 간 적이 있나요?”)하고 피의자가 호응(“예”)하면 피의자가 직접 그 내용을 진술(“거기에 간 사실이 있습니다”)한 것처럼 기재하는 방식이었다. 사실관계는 달라지지 않지만 주도권이 뒤바뀌어 증명능력이나 신빙성을 평가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형사소송법은 검사의 피의자 신문조서에 높은 신뢰를 부여해 피의자가 검사 앞에서 자백을 하고 나면 그 자백의 증거능력과 신빙성을 재판에서 부정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따질 때 검찰과 경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다르게 취급하지 않는다. 또 판사는 증거 채택 여부를 결정하고, 유무죄 판단은 배심원이 맡기에 판사가 피의자 자백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으면 배심원은 자백한 것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판단하게 된다.
샌프란시스코대 로스쿨 교수인 리처드 레오 교수는 <허위 자백과 오판>(2014년)의 한국판 서문에서 “한국 경찰과 검찰이 가진 광범위한 권한을 고려할 때 피의자 신문에 관한 완전한 기록을 만드는 것은 절차적으로는 물론 실체적으로도 특별히 중요하다. 모든 피의자 신문을 전체적으로 완전히 녹화하지 않는 한, 자백 사건에서 오판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서는 조사 전 과정의 영상녹화를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어느 시점부터 어느 시점까지 영상녹화돼야 하는지에 대한 일률적인 기준이 없다.
한국의 오판 연구 전문가인 김상준 변호사는 “결백한 사람은 고문이나 폭력이 없다면 범죄를 저질렀다고 허위자백을 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자백한 피의자는 죄를 지었다는 통념이 오류의 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오류를 바로잡는 길은 심리적으로 억압하는 피의자 신문이 무고한 피의자의 허위자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형사 사법 구조에 참여하는 경찰·검사·변호사·판사 등이 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와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참고문헌: 박미숙·김재현·박준영·김성룡 ‘형사정책과 사법제도에 관한 평가 연구(ⅩⅡ): 오판 방지를 위한 사법 시스템 평가·정비방안 연구(2018·한국형사정책연구원), 댄 사이먼 <의심:형사사법절차의 심리학>(2017·학지사), 리처드 레오 <허위 자백과 오판:피의자신문과 형사사법의 구조>(2014·후마니타스), 김상준 ‘무죄판결과 법관의 사실인정에 관한 연구: 항소심의 파기자판 사례들을 중심으로’(2013), 이기수 <허위자백의 이론과 실제>(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