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7월 인천공항(인천국제공항공사), 2019년 10월 국회(한국도로공사)에서 2년여의 시차를 두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공을 들이는 정부의 상징적 이벤트가 열렸다. 정규직화를 공공에서 민간 부문으로 확산시키겠다며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정부 행보는 긍정적 메시지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노·사가 첨예하게 맞서는 쟁점을 명확히 풀지 않고 가는 방식은 정책의 지속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강래(왼쪽)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지난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도로공사 요금수납원 현안 합의 서명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합의안에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은 참여하지 않았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도로공사(이하 도공) 통행료 수납업무 노동자 현안 합의 서명식. 노사 중재에 나선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 민생실천위원회(이하 을지로위) 위원장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박수 치는 사이에서 노사 양쪽 대표가 합의안 증서를 들고 악수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 사진과 함께 노사 갈등이 해결된 듯 보도했다. 그런데 이날 합의에는 민주노총 소속 톨게이트 노조가 빠졌다. 보름 남짓 지난 25일 현재 도공 톨게이트 노조 조합원 250여명은 여전히 도공 김천 본사에서 농성하고 있다.
통행료 수납업무는 원래 도공 직원이 담당하다가 2008년 12월부터 전면 외주화됐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2020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20만여명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도공은 지난 7월1일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서비스(이하 도공서비스)를 설립했다. 외주사업체 소속 통행료 수납업무 노동자를 본사가 아닌 자회사 도공서비스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도공의 한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적극 동참하려면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도공은 올해 상반기 외주사업체의 톨게이트 통행료 수납업무 노동자 6500여명에게 자회사 도공서비스의 정규직으로 전환을 제안했다. 5천여명은 이를 수용했다. 나머지 1400여명은 본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했다. 일자리를 잃은 1400여명은 앞서 ‘도공으로부터 실질적 노무관리를 받고 있었다’며 도공 노동자임을 인정해 달라고 소송하고 있었다.
이들 중 400여명이 지난 8월 대법원에서 도공의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았다. 도공은 이들을 직접고용하기로 했지만, 1심(900여명)과 2심(100여명)이 진행 중인 노동자들은 대법원 판결을 본 뒤 판단하기로 했다. 지난 9일 노사 합의 서명식에서 직접고용 인원에 추가된 건 2심 진행 중인 100여명만이다. 1심이 진행 중인 900여명은 일단 임시직으로 고용하고, 1심이 노동자 지위를 인정하면 직접고용하기로 했다.
전원 직접고용” 대 “1심 뒤 결정”
국회 합의 서명식 이후에도 도공 노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쌓여 있다. 양쪽이 주장을 달리하는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1심이 진행 중인 조합원의 직접고용 여부다. 민주노총 소속 톨게이트 노조는 대법원이 통행료 수납업무 노동자의 노동자 지위를 인정한 만큼, 1심이 진행 중인 조합원 900여명도 곧장 직접고용하라고 요구한다. 지난 23일 1심에서 승소해 2심이 진행 중인 민주노총 소속 톨게이트 노조 조합원 2명이 낸 가처분 사건에서는, 서울고법이 영업소와 고용 시기를 구분하지 않고 수납원 모두의 파견 관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인용해 2심 판결 선고까지 도공 노동자 지위를 임시로 인정한다고 결정했다.
반면 사쪽은 1심 진행 중인 조합원은 선고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태도다. 도공의 한 관계자는 “2015년부터는 불법 파견 요소를 거의 제거했다. 2015년 이후 외주사업체에 입사한 수납원들은 법원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톨게이트 노조는 2015년 이후 입사자 14명이 이미 1심에서 승소했다고 반박한다.
둘째, 자회사의 고용 안정성 여부다. 도공서비스는 톨게이트 통행료 수납을 고유업무로 한다. 민주노총 소속 톨게이트 노조는 도공이 2022년 스마트톨링(통행료 자동 부과 시스템) 도입을 예고한 탓에 도공서비스가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도명화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부위원장은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해 고용 불안을 해소하겠다고도 하지만, 매년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지정 승인을 받아야 해 정부가 바뀌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사쪽은 인위적 인력 감축은 없을 거라고 반박한다. 도공의 한 관계자는 “스마트톨링을 도입해도 톨게이트당 최소 한개의 현금 수납 차로 유지와 교대근무 인력 등을 고려하면 전체 인력(6천여명)이 크게 줄지 않는다. 평균 연령이 50대라 자연 감소도 생각해야 한다. 기타공공기관이 되면 예산 등 정부 관리를 받게 돼 고용 안정성이 오히려 커진다”고 말했다.
셋째, 도공에 직접고용된 수납원들의 처우다. 현재 수납업무는 자회사가 맡고 있어 도공에 직접고용된 수납원들은 신규 업무를 해야 한다. 민주노총 소속 톨게이트 노조는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고용된 수납원 380명 중 200명이 지방으로 발령났고, 일부 숙소도 임시 컨테이너 등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도공의 한 관계자는 “도공은 전국 고속도로를 관리한다. 수도권에만 배치할 수는 없다. 기존 정규직도 마찬가지다. 숙소는 하루아침에 마련할 수 없어 각 지사 사정에 맞춰 후속 조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 경쟁채용 놓고 갈등
2017년 5월12일 취임 뒤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부터 임기 내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당시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올해 안에 공사 소속 비정규직 1만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화답했다. 인천공항공사 노동자들은 박수를 쳤다. 행사가 끝날 무렵 문 대통령에게 “어떤 정규직으로 전환인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 박대성 지부장의 디테일에 대한 언급은 환호에 묻혔다. 당시 언론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의 신호탄을 쐈다고 평가했다. 지금 그 신호탄은 2년여째 허공을 맴돌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2017년 9월 자회사 인천공항시설관리, 지난 4월1일 인천공항운영서비스를 설립했다. 외주사업체와 계약 기간이 끝나면 인천공항공사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 외주사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1만여명 중 25일 현재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한 인원은 3천여명이다. 소방대 등 생명안전과 직접 관련된 업무를 하는 2900여명은 직접고용하기로 했다.
인천공항공사는 올해 말까지 노사전(노동자·사용자·전문가)협의회에서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실무 절차를 합의해야 한다. 외주사업체와 한 용역계약이 내년에 순차적으로 모두 종료되기 때문이다. 사쪽은 정부의 정규직 전환 계획이 발표된 2017년 7월 이후 외주사업체에 입사한 노동자 3천여명은 일부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 논란이 있었던 만큼 인·적성 검사, 면접 등 경쟁 채용을 거쳐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는 태도다. 민주노총 인천공항지부 쪽은 일부 채용 탈락자가 생기는 정규직 전환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선다.
신철 민주노총 인천공항지부 정책기획국장은 “채용 비리는 수사로 밝혀낼 문제다. 경쟁 채용을 한다고 채용 비리자들이 걸러지겠나. ‘고용 안정’ 조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약속에 반하는 조처”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6월 기준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20만여명 중 18만여명의 정규직 전환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자회사로 정규직 전환이 이뤄진 비율이 전환자 5명 중 1명꼴이다. 공공부문 정규직화라는 정책 목표는 바람직하지만 성과 지표에 초점을 맞춰 무리하게 추진되면 갈등이 나중에 드러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비상임활동가는 “자회사 정규직 전환은 간접고용 방식과 유사한 측면이 크다. 현재 정규직 전환용 자회사들은 독립경영보다는 거의 인력 공급형 구조로 모회사에 종속돼 있다. 모회사는 자회사의 노동조건 결정권을 갖지만 법적 사용자가 아니다. 자회사 노조가 실질적 책임이 있는 모회사에 직접 교섭하라고 요구해도, 모회사는 뒤로 빠지려 할 수 있다. 갈등을 유보한 형태로 정책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