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 항소심 선고를 듣기 전 이춘면씨가 종이에 적은 메모. 학교에 보내준다고 거짓말을 한 일본 교사 이름, 키가 닿지 않아 ‘다이’를 딛고 배고픔에 시달리며 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했던 이야기를 쏟아냈던 이씨는 종이에 “도야마현 후지코시강재공업 주식회사”와 함께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적었다. 사진 임재성 변호사 제공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면(88) 할머니가 26일 별세했다. 공업용 재료를 만드는 일본 전범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이씨는 일본 쪽 소송 지연 전략으로 사과도 배상도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27일 민족문제연구소는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면씨가 26일 0시20분 서울 동대문구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이씨는 13살이던 1944년 4월 “일본 후지코시 공장에 가면 중학교와 전문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국민학교 교장의 꼬임에 속아 근로정신대에 들어갔다. 설명 책자는 일본 기업에서 공부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를 거쳐 도야마시로 간 이씨는 약속과 달리 강도 높은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이씨는 도야마 공장에서 매주 6일간 하루 10~12시간씩 철을 깎는 일을 했지만, 임금은커녕 다쳐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다다미 한장 남짓한 곳에서 잠을 자고 내내 배고픔에 시달리던 이씨는 1945년 7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이씨와 같이 후지코시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피해자는 1600여명이고, 이 가운데 1000여명이 여성이었다. 후지코시는 여성 피해자 수가 가장 많은 전범기업이다.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 이춘면 할머니가 지난 1월23일 오후 서울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본 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이 나온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씨는 2015년 후지코시를 상대로 강제동원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2017년 3월 1심에서 이겼다. 올해 1월 항소심도 승소했지만 후지코시가 불복해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올라간 뒤 멈춰 있다. 지난 3월22일 대법원이 후지코시에 상고기록 접수 통지를 보낸 이후 7개월이 넘도록 아무런 절차도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의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다른 사건의 예를 보면, 일본 외무성이 관련 서류를 송달하지 않고 서류를 붙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씨의 소송은 유족이 이어갈 예정이다.
이씨 외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여러 손해배상 소송이 비슷한 이유로 ‘일시 정지’돼 있다. 앞서 일본 외무성은 한국 법원이 보낸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 자산 압류 결정문을 5개월 동안 뭉개다가 지난 7월 대구지법 포항지원에 돌려보낸 바 있다. 일본 정부는 문서를 송달하지 못한 경우 그 사유를 밝히라는 국제협약(헤이그송달협약)도 위반해 반송 사유도 적지 않았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