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사스키아 사센 컬럼비아대 사회학과 석좌교수(왼쪽부터), 박원순 서울시장, 김은미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글로벌 도시와 불평등,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여백의 미를 충분히 살린 것 같다. 내부 디자인에 한지를 사용한 것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위계질서를 파괴해 수평적인 문화를 살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 24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만난 사스키아 사센 미국 컬럼비아대 사회학과 석좌교수와 박원순 시장은 청사와 시장 집무실의 공간 배치를 소재 삼아 환한 얼굴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자리를 함께한 김은미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청사가 햇살을 온전히 받는 것 같아 환경적으로도 훌륭하다”고 말을 보탰다.
이날 서울시청 시장 집무실에선 세 사람의 좌담이 열렸다. 앞서 세 사람은 23~24일 이틀간 ‘대전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합의’를 주제로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각각 기조강연과 좌장을 맡았다. 진보 성향의 도시사회학자인 사센 교수는 1980년대부터 도시를 열쇳말 삼아 불평등과 자본주의 문제를 연구해왔고, 김은미 교수는 지난 2년 반 동안 전 세계 15명의 전문가가 진행한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보고서 집필 작업에 참여했다. 세 사람의 좌담은 도시와 불평등, 지속가능성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한 시간가량 진행됐다.
사스키아 사센 미국 컬럼비아대 사회학과 석좌교수
■ “서울시, 공공주택 꾸준히 늘려와”
―우선 사센 교수님이 현대 자본주의의 속성으로 강조하는 ‘축출’ 개념 이야기부터 잠깐 해보자. 축출이란 무엇인지, 어떤 메시지를 담으려 했는지 간략하게 설명해달라.
사스키아 사센(이하 사센) 도시와 관련해선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풀타임 일자리가 있어도 근로소득만으론 집을 못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도로 발전한 금융시장의 논리가 개입한다. 한 기업이 17개 나라의 공공주택을 매입한 뒤 가격을 높여 원세입자를 내쫓은 사례를 봐라. 전형적으로 자산에 기반을 둔 부 축적 방식이다. 이 모든 게 축출이다. 축출은 현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일상적 모습이자 논리다.
박원순(이하 박) 한국도 다르지 않다. 수치상으로 나타난 주택 보급률은 100%를 웃돌지만 실상 절반은 자기 집이 없다. 심지어 한 사람이 600채를 보유한 경우도 있다. 제대로 세금을 물리지도 못한다. 정치가 주거 불평등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답답하다.
―불평등이 심화하는 이런 상황을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이란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김은미(이하 김) 당연히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아주 중요한 위험요소다. 서둘러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회와 공동체, 우리의 삶이 지탱할 수 없다. 지속가능성과 불평등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다. 단지 불평등을 줄이자는 것을 넘어 지속가능한 사회와 삶의 토대를 만들자는 쪽으로 지평을 넓혀야 한다.
―주거 문제를 사례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불평등은 국제사회나 중앙정부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다. 서울시와 같은 지방정부 차원에선 구체적 정책 수단이나 해법을 마련하기 어렵지 않을까?
사센 미국 사례를 들고 싶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해법은 있다. 의지의 문제다. 오늘 오전 아시아미래포럼 세션에서 한국 기초자치단체들의 사례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갖추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첫 단추는 잘 끼운 거다. 물론 대부분의 지자체에선 눈앞에서 벌어지는 축출 현상에 신경도 안 쓰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내가 사는 뉴욕만 해도 저소득 계층을 보호하자는 토론조차 벌어지지 않는다.
김 내가 참여한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 보고서 작업도 이 문제와 관련돼 있다. 어떻게 하면 유엔이 제시한 17개 목표 실현을 위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를 다룬다. 서울시도 적극적으로 참고했으면 좋겠다.
박 사센 교수가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서울시를 운영하면서 좌절을 느낄 때가 많다. 세제 개편 권한도 없고 돈도 없다. 반드시 세제를 개혁해야 한다. 집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고 있어도 돈을 벌지 않나. 그나마 지난 8년 동안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공공주택을 꾸준히 늘려왔다. 전체 350만호 가운데 40만호를 공공주택으로 채울 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는 약 9%다.
―공공주택 확대는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해법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
사센 유엔이 블랙스톤 같은 사모펀드 기업을 주택 거품을 유발한 혐의로 고발까지 하지 않았나. 상징적이다. 일부 투자회사들이 글로벌 도시 여러 곳의 부동산을 사들여 가격을 인위적으로 띄우고 있다. 특히 미국에선 공공주택 민영화가 심각한 문제다. 뉴욕의 사례를 보면 거의 마피아 같다. 세입자들을 폭력적으로 쫓아내고 있다.
박 우리는 그렇게까지 민영화할 공공주택도 없다.(웃음) 사센 교수는 악명 높은 사례를 상당히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다.
김 결국엔 다시 사회가 지속될 수 있느냐가 화두다. 공공주택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한다. 부모들이 임대주택에 사는 애들이랑 놀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게 엄연한 현실 아닌가.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한 문제는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
박 그래서 필요한 처방약이 바로 소셜믹스 아닌가 싶다.
■ “베를린 사례 봐라, 무엇을 두려워하나”
―전 세계적으로도 도시 인구가 70%를 넘어 80%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서울만 해도 노후화한 지역이 적지 않다. 도시 재개발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도시재생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사센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재구성하자. 도시가 축출의 현장이 아니라 연대와 재생의 무대가 되도록 말이다. 서울과 같은 글로벌 도시는 ‘열린 도시’가 될 여력도 크지 않나. 영리만 추구하는 무자비한 금융자본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획일적인 얼굴의 도시 말고.
박 지금까지 뉴타운이나 재개발의 이름으로 진행된 도시재생 사업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 결국엔 소시민들만 피해를 보지 않았나. 유엔도 주거권 보호를 강조한다. 반드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사항이다. 우리의 경우엔 기업의 수용권만 보장된다. 근로소득보다 임대소득이 높은 게 과연 말이 되나. 정상적인 국가라면 근로소득이 더 많은 게 당연하다.
―오늘날 글로벌 도시에서 나타나는 대표적 불평등이 주거 문제이고, 결국엔 이 문제를 풀어야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커진다는 결론으로 오늘 이야기가 모이는 것 같다.
사센 베를린 사례도 꼭 언급하고 싶다. 무척 흥미롭다. 집값과 임대료가 뛰어오르는 걸 막기 위해 주택 임대료를 5년간 동결하는 법안을 밀어붙이지 않았나. 의지만 있다면 지방정부도 얼마든지 구체적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 무엇을 두려워하나. 의지만 있다면야.
박 서울 시민 가계지출의 30%가 주거비 지출이다. 이것만 해결하면 가처분소득이 늘어 내수도 살아난다. 주거 문제도 풀고 경제도 살리는 일이다. 공공주택은 더 많이 지어야 하고, 중앙정부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투트랙으로 꾸준히 가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진행·정리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