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 주최 7차 촛불집회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려 참가 시민들이 손팻말을 들어 보이며 검찰 개혁을 외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19년 9~10월 서울 서초동 일대에서 열린 ‘조국수호-검찰개혁’ 촛불집회는 3년 전 광화문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의 재현처럼 보였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3년 전 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고, 박근혜 탄핵 가결이라는 ‘승리의 기억’과 ‘내가 든 촛불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단단하게 공유했다.
집권여당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서초동 집회는 법 앞에 평등한 나라를 만들자는 제2차 촛불혁명”이라고 단언했다. 단순한 재현과 반복을 넘어 내용적으로 진화하고 심화된 촛불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가 언급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3년 전 광화문엔 있었으나 서초동에는 없었던’ 몇 가지다. 때로는 ‘과거에 있었으나 이제는 없는 것’이 진행 중인 사태의 성격과 본질을 드러내는 법이다. 20대 청년과 노동·진보단체, 경찰차벽 등이 서초동 집회에서 드러난 ‘부재의 존재들’ 중 일부다.
전국청년네트워크와 청년유니온 등이 지난 28일 연 ‘2019년 가을, 장을 잃어버린 청년들이 우리 사회에 묻는다’라는 토론회에서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공개됐다. 서울시 생활인구 자료를 바탕으로 서초동 집회 참가자의 연령대를 추산했더니 20대 비율은 5.7%에 그쳤다는 내용이다. 자료를 공개한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2016년 촛불이 포괄했던 청년층의 이해관계가 2019년 촛불에서는 내쳐진 모습”이라고 했다. 실제 서초동 집회에서는 3년 전 집회 때 볼 수 있었던 대학 학생회 깃발이 전무했다. 대신 40~50대가 주축인 몇몇 대학 민주동문회 깃발들만 간간이 눈에 띄었다.
진보성향 사회단체나 노동단체 깃발도 볼 수 없었다. 3년 전과 달리 조직 차원의 적극적인 참여 독려가 없었다는 얘기다. 조 장관 가족을 둘러싼 논란이 ‘상류층의 편법적인 기회 사재기’로 받아들여진 것은 진보성향 단체의 조직적 참여를 제약했다.
3년 전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에 세워졌던 경찰차벽도 이번엔 볼 수 없었다. ‘대통령 하야·탄핵’이라는 ‘공세적’ 요구가 지배했던 3년 전과 달리, 이번 집회는 ‘조국 수호’라는 구호에서 나타나듯 ‘수세적·방어적’ 성격이 강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반면 참가자들의 정치적·정서적 동질성은 3년 전보다 훨씬 강했다.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가 마지막 서초동 집회가 열린 10월12일 참가자 1760명을 상대로 현장 설문조사를 벌여 지난 24일 <내일신문>에 발표한 내용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국정운영을 잘한다’는 응답이 95.9%에 이르렀다. 3년 전 광화문 촛불집회 참가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72%나 됐다. 참가자 열에 아홉은 보수세력이 조국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이유가 “검찰개혁을 막으려고”(61.2%), “문 대통령을 반대하기 때문”(29.2%)이라고 답한 것도 상징적이다.
3년 전과 달라진 집회 양상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참가자들이 지녔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의 강도 차이에 주목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2016년 집회 참가자들에게는 우리 뒤에 다수가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올해 서초동에선 ‘우리가 피플 파워를 대표한다’는 자신감은 약해졌다. 오히려 스스로의 판단을 ‘우리가 아닌 다수’에게 설득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였다”고 진단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서초동 촛불 역시 강력한 민심의 표현이긴 했지만, ‘조국 수호’라는 슬로건은 규범적 정당성 측면에서 문 대통령 지지층을 뛰어넘는 국민 다수의 자발적 지지와 참여를 조직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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