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 본부장이 1979년 11월 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전모를 육군회관에서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발령한 계엄포고 10호가 위헌·위법해 무효라는 첫 법원 판단이 나왔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1단독 정용석 부장판사는 전두환 정권 시절 계엄법 위반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신아무개(66)씨가 낸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고 5일 밝혔다.
1980년 12월 목수로 일하던 신씨는 거래처에서 일을 마치고 서울 한 포장마차에서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취기가 오른 신씨는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은 김대중 당시 전 국회의원(전 대통령)을 언급하면서 ‘김대중은 똑똑한 사람이어서 전두환이 잡아넣었다’, ‘아무리 독재를 한다해도 북한 김일성만큼 할 수 있겠느냐’는 취지로 말했다가 식당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잡혀갔다. 경찰은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신씨를 구타하면서 자백을 강요했다. 이듬해 1월 신씨는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고 현직 국가원수를 모독, 비방했다’는 혐의(구 계엄법 13·15조 위반)로 수도군단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가혹행위를 당한 신씨는 40여년 동안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후유증에 시달리다 지난 7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신씨가 위반했다는 계엄포고 10호는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가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계엄사령관 이희성 명의로 발령한 것이다. △모든 정치활동 및 정치적 목적 집회·시위 금지 △언론·출판·보도 사전 검열 △ 대학 휴교령 △ 전·현직 국가원수 모독 등 유언비어 날조·유포를 금지했고 이를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구금할 수 있게 했다. 국민 저항을 틀어막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
재판부는 이 계엄포고가 “위헌이고 위법해 무효하다”며 재심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가긴급권은 국가가 중대한 위기에 처했을 때 최소한도로 행사돼야 하고 헌법상 요건에 부합해야” 하는데 당시 계엄포고 10호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해당 계엄포고는 전두환 등이 시국을 수습한다는 명목 아래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 저항을 제압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발령한 것으로, 당시 국내외 정치·사회 상황이 구 계엄법이 정한 요건(군사상 필요할 때)에 해당한다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계엄포고 내용 또한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고 영장주의 원칙을 위배하는 등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봤고, 신씨에 적용된 ‘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 조항은 “적용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무엇이 위법행위인지 예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는 전두환 정권의 계엄포고 10호에 대한 첫 법적 판단이다. 당시 인권침해 피해자들은 ‘5·18 민주화운동법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거나, 전두환 정권의 내란음모 행위에 저항했다는 사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점이 입증돼야만 특별 재심이 인정됐다. ‘막걸리 보안법’과 같이 일상에서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 받은 이들이 재심을 청구하기 쉽지 않았다.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이번 판결은 계엄포고 10호 자체에 대해 법적인 평가를 내린 것으로, 법원 판단이 확정되면 계엄포고 10호 위반 혐의로 유죄 판단을 받았던 시민들에 대한 전반적인 구제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1980년 8월 전두환 정권이 발령한 계엄포고 13호가 위헌·위법해 무효라 판단한 바 있다. 대법원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삼청교육대에서 탈출하다 잡혀 계엄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아무개씨가 청구한 재심사건에서 ‘재심 사유가 있다’고 봐 재심 결정을 최종 확정했다. 1980년 8월 발령된 계엄포고 13호는 “폭력·공갈·사기·사회풍토 문란 사범을 검거해 일정 기준에 따라 분류·수용하고 순화교육과 근로봉사 등으로 사회에 복귀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삼청교육대의 설치 및 운영 근거가 됐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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