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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30분 일찍 출근해 ‘꾸밈 노동’ 제공한 샤넬 직원에 법원 “연장근로수당 지급 안 돼”

등록 2019-11-07 17:40수정 2019-11-07 21:33

그루밍 가이드, 조기 출근 영상 제공 불구
법원 “명시적으로 지시한 거라 볼 수 없어”
면세점 안에 있는 화장품 매장에 검은 유니폼을 입은 판매 사원이 보인다. 연합뉴스.
면세점 안에 있는 화장품 매장에 검은 유니폼을 입은 판매 사원이 보인다. 연합뉴스.

“9시30분보다, 또는 11시보다 2∼30분 더 일찍 출근하는 것이 아까운가요?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지나요?” 명품 향수 및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샤넬코리아의 ‘매장 관리 매뉴얼’에 기재된 문구 일부다. 백화점 개점 시간은 보통 오전 10시30분 전후고, 샤넬 매장 직원들의 출근 시간은 오전 9시30분이다. 하지만 직원들 이야기는 달랐다. 샤넬코리아가 매뉴얼 내용처럼 30분 일찍 출근해 메이크업과 복장 상태를 갖추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샤넬코리아는 직원들의 ‘꾸밈노동’을 요하는 ‘그루밍 가이드’도 만들었다. 직원들은 회사가 정한 화장법에 따라 용모를 꾸미고, 향수와 액세서리를 착용해야 했다. 그루밍 가이드에는 눈과 입술, 손톱 등 부위별로 사용해야 할 샤넬 제품의 목록과 액세서리 착용법이 세세히 적혀 있었다.

샤넬 매장 직원 335명은 “조기 출근해 회사 지침에 따라 화장을 하고 옷을 입는 시간은 근로계약상 업무 수행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회사는) 2014년 7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제공한 노동에 대한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며 샤넬코리아를 상대로 임금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재판장 최형표)는 7일 “직원들이 30분 일찍 출근해 그루밍 가이드에 따른 노동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직원들이 회사 지침에 따라 화장과 복장 준수 등 꾸밈 노동을 제공한 점은 인정했다. 고가의 샤넬 제품을 사용해야 하는 직원들은 매장에서 화장을 했고, 이는 근로 시간에 포함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들이 ‘30분 일찍’ 출근해 해당 노동을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새로운 달이 시작되는 날, 크고 작은 행사가 계획된 날, 새로운 제품 출시일, 한 달을 마무리하는 달 등에는 무언가 되짚어보고, 미리 점검해 만반의 준비로 여유 있는 아침을 맞이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기재된 문구를 근거로 “조기 출근은 행사 준비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 매뉴얼에 출근 시간 관련 문구가 나오지만 “직원들이 상시적으로 30분 일찍 출근해 메이크업을 마칠 것을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지시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롯데백화점 포항점과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 등 다수의 백화점 매장에서 확보한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영상에 샤넬 매장 직원들이 오전 9시 이전 출근해 메이크업을 하는 모습이 찍혔으나, 재판부는 이를 ‘연장근로’의 근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영상 등) 증거로는 회사가 일찍 출근해 메이크업을 하도록 지시했다거나, 판매 직원들이 회사의 지휘·감독 아래 매일 9시에 출근해 근로를 제공했다고 인정하기엔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직원들이 모든 근무일마다 정규 출근시간보다 이른 9시에 출근을 했다고 인정할만한 출퇴근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일부 매장의 시시티브이 영상에서는 조기출근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소송을 맡았던 김세희(법무법인 여는) 변호사는 “샤넬은 직원용 출퇴근 기록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수년 전 제공한 노동 시간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조기 출근이 관행적으로 이어졌지만 재판부는 당시 연장 근로가 얼마나 이뤄졌는지 입증되지 못했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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