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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AS] 수험생들 혼돈에 빠트린 ‘수능 샤프 교체설’ 사실일까

등록 2019-11-08 17:43수정 2019-11-08 21:23

납품업체 ‘국산 부속품’ 논란 이어
경쟁사 ‘2020 공식 샤프’ 광고까지

수험생들 “익숙치 않으면 불편한데…”
평가원 “교체 여부 공개 불가…부정행위 방지”
지난해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일 당시 서울 중구 이화외국어고등학교에서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수험생들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해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일 당시 서울 중구 이화외국어고등학교에서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수험생들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달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수능 샤프 제품명 공개를 요구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청원을 올린 이는 “‘수능 샤프’의 납품 업체가 바뀐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13년 동안 수능 샤프를 납품해온 회사가 올해 평가원에 제품을 납품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라며 수능시험용 샤프 제품명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또한 수능 샤프 제품명을 공개해야 하는 이유로 “특정 샤프 필기감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시험장에서 큰 불편을 느낄 수 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청와대 청원만이 아닙니다. 다음주에 수능시험을 응시하게 된 수험생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수능 샤프를 공개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전민영(18)씨는 “사전 공지 없이 바꾸는 게 마음에 안 든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미리 알려줬으면 좋을 거 같다. 수학 영역 풀 때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수능이 1주일도 남지 않은 지금,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때아닌 ‘수능 샤프’논란이 번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2005학년도 수능까지만 해도 수능용 샤프는 따로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수능 샤프를 일괄적으로 나눠주는 게 아니라 원하는 필기구를 가져와 수능을 치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2004년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 부정행위가 적발됩니다. 당시 경찰이 80여명에 이르는 인원을 수사했을 정도입니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중학교 동창 사이이던 두 사람이 서로 부족한 과목의 답을 문자 메시지로 보낸 사실 등이 드러났습니다. 2005년 2월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부정행위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한 까닭입니다. 이때부터 “카메라, 펜 등 첨단 통신장비 반입을 막기 위해서 시험당국에서 제공하는 것이 아닌 필기구 사용이 금지”됐습니다.

2006학년도 수능부터 사용된 수능 샤프의 절대 강자가 바로 ㄱ사입니다. 2011학년도 수능을 제외하고 2019학년도 수능까지 해마다 수험생들의 손엔 ㄱ사의 샤프가 들렸습니다. 매해 중순 정부 입찰공고가 올라오는 나라장터에는 ‘수능 수험생용 샤프 및 샤프심 구매’ 공고가 올라오는데 계약 조건이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샤프의 뒷부분을 눌러야 샤프심이 나오는 ‘노크식’이어야 하며 상단에는 지우개가 붙어 있어야 합니다. 정부는 겉모양과 작동성, 심의 유지성 등 샤프 품질을 8개 항목으로 나눠 시험합니다. 게다가 “최종 낙찰업체로 선정된 경우 생산기간 중 제조공장을 방문해 무작위로 선정한 제품”으로 시험까지 치르도록 명시돼 있습니다.

이런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계속 수능 샤프로 선정된 ㄱ사 샤프 선정에 논란이 인 건 올해 여름 한 누리꾼이 평가원 게시판에 올린 ‘ㄱ샤프 내부가 일본 필기구 회사 ODM(제조업자개발생산)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냐’는 의혹 때문입니다. 까다로운 계약조건에는 ‘샤프와 샤프심 모두 순수 국산품이어야 한다’는 항목도 있습니다.

논란에 기름을 끼얹은 건 필기구 경쟁업체인 ㄴ사 샤프를 판매하는 오픈마켓에서 ‘2020 수능 공식 샤프’라는 광고문구를 내걸면서부터입니다. 오랫동안 ㄱ사의 샤프로 훈련해왔던 수험생들은 혼돈에 빠졌습니다. 전쟁을 코앞에 두고 ‘무기’가 변경된 형국입니다. 일부 언론과 누리꾼들은 ‘수험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ㄱ사 샤프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공지가 ㄱ사에 최근 올라왔다며 수능 공식 샤프 교체를 기정사실화했습니다.

그러나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수능 샤프 교체는 사실일 수도, 아닐수도 있습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보안’을 이유로 평가원 쪽도, 업체 쪽도 기밀을 엄수하고 있어섭니다. 2005학년도 수능 때 극히 일부 학생이 저지른 부정행위의 여파가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미치고 있는 셈입니다. ㄱ사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ㄱ사 샤프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해당 공지는 최근에 올라온 게 아니라 2018년에 올린 것으로 공지가 아니라 광고다. 평가원의 수능 샤프 입찰에 응했기 때문에 보안상 (샤프가 교체됐는지 아닌지) 답변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입찰 업체들은 수능과 관련한 정보들에 대해선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평가원의 입장도 같습니다. 평가원은 “(교체 여부를) 공개할지 말지 평가원 내에서도 검토를 많이 했지만 결국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서다. 특정 샤프 제품을 미리 공지하면 사전에 구매해서 샤프 안에 컨닝페이퍼를 넣어놓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수능 샤프 교체설의 진위는 수험생들이 수능시험장에 들어선 뒤에야 확인할 수 있겠습니다. 12년 내공을 쌓은 수험생들이 샤프 펜슬 하나를 두고 울고 웃어야 하는 현실, ‘스카이캐슬’ 대한민국의 그늘 아닐까요? 부디 낯선 환경에서 낯선 펜을 손에 쥐고 시험을 치러야 할 수험생 여러분 모두, 노력을 배신당하지 않는 공정한 결과를 거두시기를 기대합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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