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4시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인근 갤러리 허브에서 열린 ‘한국, 미국, 베트남 참전군인의 대화’에서 베트남인 쿠엇꽝투이,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 김낙영 작가, 제럴드 웨이트 연구원과 통역사들이 한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인 김낙영(71·작가), 미국인 제럴드 웨이트(72·인류학자), 베트남인 쿠엇꽝투이(69·작가). 20일 오후 4시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인근 갤러리 허브에서 열린 토크쇼 자리에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국적도, 하는 일도 다른 이들이 함께 앉은 풍경은 다소 낯설어 보였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다. ‘베트남 전쟁’이다. 세 사람은 지난 1970~1975년 ‘월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다. 이들은 저마다 기억하고 있는 베트남 참전 당시 참혹했던 기억과 상처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1972년 한국 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 안케패스 전투에 참전했던 김낙영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김씨는 “우리 중대 100명이 전투에 들어갔다가 13명이 살아남을 정도로 전멸 상태였다”며 “당시 저 사람(적군)이 나보다 좋은 생각을 가지고 좋은 사회를 만들 수도 있는데 꼭 쏴야 하나 고민했다. 적을 만나면 총을 쏴야 하니 적을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다”고 돌이켰다.
이어 현재 평화·분쟁 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중인 제럴드 웨이트도 “전쟁이 끝난 후 2000년에 베트남에 16번이나 방문해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추모하고 향을 피웠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1970년부터 2년간 베트남전에 민사담당 장교로 참여했던 그는 “고노이에서 베트남군을 축출하라는 명령을 받고 미군과 한국 해병대가 몇 차례에 걸쳐 연합작전을 수행했다. 이후 포탄과 폭격은 그 지역을 동식물 하나도 없는 달 표면과 흡사한 먼짓가루로 바꿔버렸다”고 증언했다.
‘참회’를 담은 두 사람의 고백에 이어 쿠엇꽝투이 작가가 ‘용서’를 담아 말을 이어갔다. “베트남전은 베트남 사람들 운명뿐 아니라 인류의 운명에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전쟁에 참여했던 용사들이 잘못했다는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베트남 사람에게 비극적인 일이다. 하지만 원한을 가슴속에 오래 담아두지 않는다.” 그는 또 “전쟁에서의 잘못은 결코 수정할 수 없지만,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고 공론화해서 인류가 다시는 이런 잘못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잘못을 기억하는 것만 해도 굉장히 많은 일을 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 20주년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사죄를 촉구하기 위해 2000년에 시작된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한베평화재단’은 이날 토크쇼에 이어 21일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전을 중심으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오는 23일 오후 2시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 배상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참전군인 조사 문서 공개 △모든 시중 교과서에 민간인 학살 문제 추가 등을 요구하는 집회도 열 예정이다. 앞서 지난해 3월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을 국빈방문해 이 문제와 관련해 유감을 표했지만, 정부가 학살 사실을 인정하고 베트남 정부에 공식으로 사과한 일은 없다.
글·사진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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