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수활동비(특활비) 상납 사건’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판단했다. 국정원장이 회계관계 직원에 해당하기 때문에 횡령죄 중 법정형이 가장 높은 국고손실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원심과 달리 2억원의 뇌물도 인정돼 박 전 대통령의 형량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28일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전직 국정원장들로부터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특정범죄가중법 위반(국고손실·뇌물)을 무죄로 판단해 징역 5년과 추징금 27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5월~2016년
9월까지 남재준·이병기·이병호 당시 국정원장에게 특활비 36억5천만원을 뇌물로 전달 받은 혐의를 받는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은 특활비를 전달하는 등 이를 묵인·방조했다. 특활비는 사용처를 증빙하지 않아도 되는 약 40억원 규모의 국정원 예산이다.
쟁점은 국정원장이 관련법상 ‘국가의 회계사무를 처리하는 사람(회계관계 직원)’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박 전 대통령에 국고손실죄가 성립하려면, 국정원장이 관련법(회계직원책임법)이 정한 회계관계 직원에 해당돼야 한다. 앞서 1·2심 모두 특활비는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국정원장이 회계관계직원인지 여부는 엇갈린 판단을 내놨다. 1심은 국정원장을 회계관계 직원으로 봐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6년·추징금 33억원을 선고했지만, 2심은 국정원장이 회계관계 직원이 아니라고 봐 징역 5년·추징금 27억원을 선고했다.
이날 대법원은 “특활비 집행과 관련해 국정원장은 관련법상 회계관계 직원이 맞다”며 엇갈린 하급심 판단을 정리했다. 대법원은 “전직 국정원장들은 특활비 집행 과정에서 사용처, 지급 시기와 지급 금액을 직접 확정하고, 실제 특활비를 지출하도록 하는 등 회계관계 업무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또 특활비 36억5천만원 중 2016년 9월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이 건넨 2억원은 뇌물이 맞다고 판단했다. 국정농단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 자금 전달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는데 이 전 원장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결정’에 따라 특활비를 전달했다고 본 것이다. 대통령이 국정원장의 지휘·감독 및 인사권자였다는 점에서 뇌물 범죄 성립에 중요한 대가성이 있다고도 짚었다. 나머지 특활비는 횡령으로 얻은 돈을 나눠 가진 것에 불과할 뿐 뇌물은 아니라고 봤다.
대법원 판단으로 박 전 대통령의 형량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정범죄가중법상 1억원 이상의 뇌물을 받으면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게 돼있다. 법원 관계자는 “형이 더 무거워질 가능성이 높지만, 이미 중형 선고가 예정돼있어 형량이 얼만큼 늘지는 가늠이 어렵다”고 말했다. 연말 사면설 또한 거리가 멀어졌다. 특별사면은 형이 확정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데, 국정농단 사건과 특활비 사건의 파기환송심 재판이 서울고법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의 확정 형량은 새누리당 공천 개입 사건으로 인한 징역 2년이다.
이번 대법원 판단은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 등으로 항소심 재판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같은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재판에서 국고 손실 혐의를 무죄로 본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문고리 3인방의 원심을 확정했다. 이재만 전 비서관은 원심에서 징역 1년6월, 안봉근 전 비서관은 징역 2년6월에 벌금 1억원, 추징 1350만원, 정호성 전 비서관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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