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 놀러갔다가 성인용 풀에서 사고를 당해 사지가 마비된 어린이의 부모가 수영장 관리 주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심을 뒤집고 수영장 관리자의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하나의 수영장에 어린이 구역과 성인 구역을 함께 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28일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수영장에서 익수 사고를 당한 어린이와 그 부모 등이 수영장을 관리하는 성동구도시관리공단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수영장쪽에 책임이 없다고 본 1·2심과 달리 대법원은 “관련법의 입법취지에 비춰봤을 때, 하나의 수영장에 성인용 구역과 어린이용 구역을 같이 설치하고 벽면에 수심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수영장 구조에 하자가 있고, 이 하자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2013년 7월 정아무개군(당시 6살)은 엄마, 누나, 이모와 함께 성동구 한 야외 수영장에 놀러갔다. 이 수영장은 하나의 수영장에 수심 1.2미터(m)의 성인용 구역과 수심 0.8미터의 어린이용 구역을 같이 두었는데, 두 구역은 코스로프(course rope)로만 구분돼 있었다. 정군의 당시 키는 113cm였다. 수영장에서 놀던 정군은 성인용 풀에서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돼 병원에 실려갔고, 사지마비와 두 눈이 실명되는 중상해를 입었다.
정군의 부모는 수영장의 어린이용 풀과 성인용 풀이 코스로프 하나로만 나뉘어져 있고, 이 둘을 구분하거나 성인용풀에 어린이 진입을 금지하는 표지판이 설치돼있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며 수영장을 관리하는 성동구도시관리공단을 상대로 모두 3억3천여만원의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그러나 1심에 이어 2심도 원고 패소 판결했다.
2심은 어린이 진입금지 표지판이 설치돼있지 않더라도, 비슷한 효과가 있는 여러 조치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풀 앞에 130cm 높이의 키재기 판이 세워져있어 그 미만인 아동은 성인용 풀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한 점 △안전수칙 표지판도 3곳에 두어 수심표시를 했고 △“아이가 혼자 수영하지 않도록 부모님께서 주의해달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낸 점 등을 판단에 고려했다. 또한 아이가 어린이용 풀에 들어갔다가 성인용 풀로 넘어가 사고가 발생했다는 부모 쪽 주장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성인용 수영장과 어린이용 수영장을 분리하지 않고 동일한 수영장에 어린이용·성인용 구역을 나눈 채 코스로프로만 구분해 놓은 것 ‘그 자체로’ 수영장 설치·보존상의 하자가 있다”고 판단했다. 민법(제758조1항)에 따르면, 공작물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해 타인에 손해를 가하면 공작물 점유자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 또한 부모의 주의의무 위반이 사고 발생의 원인 중 하나라 하더라도, 수영장 관리자인 공단에 수영장 설치·보존상 하자로 인한 책임을 묻는 데 방해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에 따르면, 앞으로 하나의 수영장에 어린이용 구역과 성인용 구역을 같이 설치해 어린이가 성인용 구역에서 물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수영장 관리자는 민사상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진다.
대법원 관계자는 “수영장 관리자에게 어린이 사고 방지를 위한 위험방지 조치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주문하고 그에 필요한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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