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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위헌 결정 받은 ‘인터넷 실명제’ 여론의 심판대 오르다

등록 2019-11-30 10:10수정 2019-12-01 14:42

[토요판] 뉴스분석 왜
인터넷 실명제 논란

설리의 비극, 인터넷 실명제 여론 확산
2005년 선거법 첫 도입 ‘아직 유효’
정보통신망법 관련 조항 2012년 폐지
현재 선거운동 기간에만 실명제 부활

익명 표현 자유 ‘대의민주주의’ 발전
인터넷상 타인의 권리 침해도 심각해
헌법, 표현 자유와 함께 한계도 명확
‘권리 침해 시 배상 청구’ 헌법에 규정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정보통신망법의 인터넷 실명제 조항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최근 연예인들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지며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서울 재동 헌재 대심판정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정보통신망법의 인터넷 실명제 조항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최근 연예인들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지며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서울 재동 헌재 대심판정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연예인 설리의 극단적 선택 이후 악성 댓글 등 폐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인터넷 실명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2012년 헌법재판소가 이미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이 보장하는 의사표현을 억제하면 민주주의 근간인 자유로운 여론 형성이 방해된다는 게 결정 이유였다. 우리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만큼 타인의 권리 침해도 엄격히 금지한다.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1791년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하는 ‘파놉티콘’(원형감옥)을 고안했다. 파놉티콘(panopticon)은 우리말로 각각 ‘전체’, ‘본다’는 뜻의 영어 ‘pan’과 ‘opticon’의 합성어다. 이 감옥 중앙에는 원형의 높은 감시탑이 있고, 감시탑 바깥 원둘레를 따라 죄수 방이 붙어 있다. 중앙 감시탑은 어둡게, 죄수 방은 밝게 한다. 죄수 방에선 중앙 감시탑에 있는 감시자 시선을 확인할 수 없다. 항상 감시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죄수는 감옥 규율을 내면화해 자기 검열을 하며 행동한다. 사실 벤담은 파놉티콘 실험이 성공하면 사회 전체를 이 원리에 맞춰 재건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파놉티콘은 공권력의 감시로 개인이 표현 행위를 자제하는 위축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사전에 제약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여기엔 익명 표현의 자유도 포함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법이 존재했던 적이 있다. 바로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의 인터넷 실명제 조항이다.

이 조항은 갑론을박에 휩싸이다가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올랐다. 헌재는 2012년 8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다. 최근 연예인 설리의 극단적 선택 등으로 악성 댓글 폐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인터넷 실명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던 헌재의 7년 전 판단이 여론의 중심으로 다시 소환되고 있다.

선거법 따로, 정보통신망법 따로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는 최근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해달라는 청원글이 10여건 올라왔다. 국회 법안 발의도 잇따르고 있다.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달 25일 혐오 표현 등을 불법정보에 포함해 정보통신 이용자가 서비스 제공자에게 불법정보를 삭제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도 같은 날 댓글 아이디 이름을 전부 공개하고 아이피(IP)를 공개해 온라인 댓글 책임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인터넷 실명제는 주민등록번호 등 실명 인증 수단으로 인터넷 게시판 이용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제도다. 회원 가입을 할 때 실명을 확인하는 ‘본인 확인 실명제’와 게시물에 실명을 노출하는 ‘포괄적 인터넷 실명제’ 두 가지 방안이 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공직선거법(이하 선거법)과 정보통신망법에 각각 규정돼 있었다. 선거법에는 선거운동 기간에 정당·후보자 관련 글과 관련해 인터넷언론사에 적용하는 ‘한시적 실명제’ 조항이 있고, 정보통신망법에는 인터넷 게시판 설치·운영자가 이용자 본인 확인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하는 ‘상시적 실명제’ 조항이 있었다.

선거법 조항은 그동안 세 차례 헌법소원에서도 합헌 결정이 났지만, 정보통신망법 조항은 2012년 8월 위헌 결정으로 삭제됐다. 이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보통신망법 조항의 위헌 결정 취지가 선거법에도 반영되려면 선거운동 기간 인터넷 실명제도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국회에 선거법 개정 의견을 제출했다. 아직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리하면, 현재 인터넷 실명제는 평상시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선거운동 기간 인터넷언론사의 정당·후보자 관련 글에 한정해 부활한다.

인터넷 실명제는 2005년 8월 선거법에 처음 도입됐다. 선거법 82조의6 1항은 인터넷언론사가 선거운동 기간 누리집에 정당·후보자 관련 정보를 올리도록 할 때 이용자의 실명 확인을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2008년 4월, 2009년 2월 각각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헌재는 2010년 2월 합헌 결정을 했다. 헌재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이 같은 취지로 낸 헌법소원 사건도 2015년 7월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10년에는 재판관 7(합헌) 대 2(위헌) 의견, 2015년에는 5 대 4 의견으로,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이 늘어나 위헌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헌재가 선거법의 인터넷 실명제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소수에 의한 여론 왜곡으로 선거의 평온과 공정이 위협받아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손실과 부작용 방지다. 둘째는 인터넷 특성상 흑색선전이나 허위사실이 빠르게 유포돼 정보 왜곡이 쉽고, 짧은 선거운동 기간에 이를 바로잡기가 불가능한 점이다. 하지만 위헌을 주장한 재판관들의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정치적 의사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선거운동 기간에 익명의 의견 표명을 불가능하게 해 선거의 공정성이라는 입법 목적 달성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점이 주요 논거로 제시됐다.

실명제 효과 의문

선거운동 기간에만 부활하는 선거법 조항과 달리 상시로 인터넷 실명제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 조항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정보통신망법에 인터넷 실명제 조항이 처음 신설된 건 2007년 7월이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 보급 확산으로 2000년대 들어 이용자가 급증하기 시작하자 인터넷의 언어폭력, 명예훼손 등 역기능이 함께 늘어났다. 정부는 익명성에 기반을 둔 이용 행태 특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2003년 당시 정보통신부가 사회적 영향력이 큰 대형 포털 중심으로 본인확인제 도입을 결정했다. 본인확인제는 인터넷 게시판 이용자가 본인확인 절차를 거친 뒤 글을 게재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에게 의무를 부과한 조처다.

2007년 1월 정보통신망법에 관련 조항이 생겨 같은 해 7월부터 시행됐다. 인터넷 실명제가 적용되는 사이트는 일일 방문자 수를 기준으로 정해졌다. 2007년 35개, 2008년 37개, 2009년 153개, 2010년 167개, 2011년 146개로 해가 갈수록 대상 사이트가 늘어났다. 2010년 미디어오늘 등이 정보통신망법의 인터넷 실명제 관련 조항이 표현 및 언론의 자유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2012년 8월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우선 익명 표현을 보장하면 자유로운 여론 형성으로 국민 의사가 평등하게 반영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때문에,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 표현이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더라도 보호될 헌법적 가치가 더 크다고 밝혔다. 정보통신망법 인터넷 실명제 조항의 입법 목적인 ‘건전한 인터넷 문화 조성’은 손해배상 또는 형사처벌 등 사후적 수단으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주요 국가들이 민간 주도의 사후적 대처 방식으로 인터넷 유해 정보를 규제하고 있으며, 인터넷 실명제 이후 명예훼손, 모욕, 비방 정보의 게시물이 ‘익명 표현 자유의 사전적 제한’을 정당화할 정도로 의미 있게 감소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며 효용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인터넷 실명제 효과와 관련해 헌법소원이 집중적으로 제기된 2010년 무렵 몇 차례 연구들이 진행됐지만 유의미한 효과가 도출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2007년 낸 ‘제한적 본인확인제 효과 분석을 위한 조사보고서’를 보면, 인터넷 실명제 전후로 게시글은 비방과 욕설이 1~2%, 댓글은 비방과 욕설이 3% 정도 감소하는 데 그쳤다. 우지숙 서울대 행정대학원 부교수 등이 2009년 11월 낸 논문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의 효과에 대한 실증 연구’에서도 인터넷 실명제 실시 이후 게시글 비방과 욕설은 그대로이고, 댓글 비방과 욕설만 조금 줄었다. 그나마도 이들 연구는 인터넷 실명제 이후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가 악성 댓글을 삭제하는 등 관리를 강화한 변수 등이 반영되지 않은 한계를 안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는 지난달부터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요구하는 청원 글이 10여건 올라왔다. 청원인들은 악플러의 비방이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고 말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 화면 갈무리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는 지난달부터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요구하는 청원 글이 10여건 올라왔다. 청원인들은 악플러의 비방이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고 말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 화면 갈무리

익명의 청원인

헌재에는 ‘우리 사회 큰 변화를 이끄는 주요 결정이 한 해 2~3건 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이런 결정들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면서도 그 흐름을 한 단계 더 뛰어넘는 내용을 담는다. 1996년 한국 영화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영화 사전심의 위헌 결정이 하나의 사례다. 헌재 한 관계자는 “헌재는 위헌 결정하려고 존재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헌재는 지난해 8월 창립 30돌을 맞아 그동안 내린 3만3천여 건의 결정 가운데 가장 많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사건을 발표했다. 동성동본 결혼금지 헌법불합치, 호주제 헌법불합치, 유신시대 긴급조치 위헌 등 국가 권력에 짓눌려 잠들어 있던 개인 기본권에 숨을 불어넣은 사건들이 여럿 순위에 올랐다. 인터넷 실명제 위헌은 상위권인 5위에 올랐다.

그 후 7년 동안 헌재가 인터넷 공간에 열어준 익명 표현의 자유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자유로운 비판과 소통을 가능하게 했고, 대의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기능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 못지않게 헌법이 중요하게 여기는 타인의 명예·권리에 대한 침해를 제한하는 방안 모색은 상대적으로 간과돼온 점이 최근 연예인 악성 댓글 사건 등의 잇따른 피해로 입증되고 있다.

2012년 헌재의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이 난 다음 달인 2012년 9월 국회입법조사처 김유향 입법조사관 등이 발행한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과 향후 과제’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이를 예견이라도 한 듯 ‘이번 결정을 계기로 건전한 인터넷 이용 환경의 촉진이 과연 인터넷 실명제와 같은 규제 수단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다른 대안은 없는지 본격 논의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밝혔다.

우리 헌법은 언론·출판 표현의 자유 못지않게 그 한계 역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1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 헌법 21조는 4항에서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선을 긋고 있다.

헌재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법무법인 제민 대표변호사는 “언론·출판의 자유는 익명성까지 보장된다는 것이 헌법의 대원칙이다. 그러면서도 헌법은 타인의 명예·권리 침해도 엄격히 금지한다.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은 전파력 탓에 피해가 크다.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폐해를 막으려면 예방 차원에서 강력한 페널티를 줘야 한다. 피해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고소하고, 검찰이 관련 수사를 강화하며, 법원은 형량을 높여야 한다. 다만 표현의 자유가 가져다주는 많은 이익을 고려하면 인터넷 실명제 등 사전적 제한보다는 사후적 제한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향 입법조사관 등은 2012년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서 ‘헌재 위헌 결정으로 인터넷 실명제 규정을 일부 수정하거나, 민간사업자의 자체적인 실명제 운용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국가는 민간사업자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 표현의 자유로 인한 역기능을 자율적으로 방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사업자가 스스로 건전한 인터넷 이용 문화를 선도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게시물 관련 분쟁을 원활히 해결해나가면 객관적 평가에 기반을 둬 각종 규제 적용의 예외를 인정해주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서는 오늘도 청원인들이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를 담아 인터넷 실명제 도입 등 다양한 주제의 요구사항을 자유롭게 펼쳐내고 있다. 청원인들은 누군지 알 수 없는 익명으로 돼 있다. ‘naver - ***’, ‘kakao - ***’, ‘facebook - ***’.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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