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때 정부가 농지를 강제 수용한 ‘구로농지 강탈 사건’에서 대법원이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국가배상 책임을 거듭 인정했다.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적용해 과거사 피해 사건에서 ‘소멸시효’의 주장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3일 대법원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구로농지 사건’ 피해 유족 등 200여명이 정부를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약 660억원의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국가배상책임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원심에 대해 “헌재 위헌 결정에 따라 효력이 없게 된 규정을 적용한 잘못이 있으나, 정부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결론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지난해 8월 헌재가 “과거사 피해자에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을 적용한 판단이다.
이 소송에서 정부는 원고들의 주장이 소멸시효인 5년을 지났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정부의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며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이 사건의 배경인 서울 구로동 일대 농지는 일제가 강제 수용한 곳이었다. 해방 후인 1950년 3월 정부는 농지개혁법에 따라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줬다. 1961년 9월 박정희 정권은 구로공단을 조성을 이유로 농민들을 강제로 내쫓았는데, 농민들은 이에 “농지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대부분 승소했다. 정부는 수사기관을 동원했다. 검찰은 1968년 구로 농지 관련 인물들에 대한 ‘소송 사기’ 혐의 수사에 나섰다. 농민뿐 아니라 관련 공무원을 대상으로 불법체포와 감금 등 방법으로 수사해 기소했다. 정부는 형사판결을 토대로 민사소송을 내 최초 재판들을 뒤집었다.
2008년 7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의 진실규명을 결정했고, 농민 대다수가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후 이들은 무죄 판결을 근거로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정부가 승소했던 민사소송 재심을 다시 심리해달라며 재재심을 청구해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받았다. 이후 이들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017년 피해 농민 유족 등 수백명이 낸 소송 상고심에서도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했었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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