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처벌이 아닌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이수한 음주운전 사건 피고인이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받았다. 재범 가능성을 줄이고, 바람직한 습관을 만드는 치유법원 프로그램이 적용된 국내 첫 사례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4일 도주치상(뺑소니,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허아무개(34)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허씨에게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했다면 그 첫 졸업자로서 밝고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했다. 허씨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 법원이 그의 반복적인 음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지난 1월 허씨는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피해자 회복 조처를 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났다. 이미 두차례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던 그는 1심에서 실형을 받았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허씨에게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재판부가 허씨를 직권으로 보석 석방한 뒤 3개월간 그에게 과제를 부여해, 수행 결과를 양형에 반영한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허씨에게 금주 조건과 더불어 매일 밤 10시 전에 귀가하고, 활동 보고서와 동영상을 재판부가 개설한 비공개 카페에 올릴 것을 제안했다. 재판부는 보석 조건 준수 점검회의를 열어 게시글을 평가하며 허씨의 상황을 살폈다. 재판부는 게시글에 격려의 댓글을 직접 달기도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8월23일 보석 석방된 뒤 현재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과제를 수행했다. 이 기간 동안 술을 마시지 않고 저녁 10시까지 귀가해 자녀들과 놀아주거나 숙제를 도와준 활동 보고서를 카페에 올렸다”며 그의 프로그램 이수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운영하는 ‘치유법원’은 피고인에게 바람직한 습관을 형성하도록 도와 변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다. 허씨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이 제도를 우리 형사소송법 체계에 맞도록 바꿔 처음 시행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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