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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노인요양기관서 급여 빼돌려도 ‘처벌’은 빼자는 민주당

등록 2019-12-04 18:10수정 2019-12-04 22:31

거짓 급여 청구 땐 징역·벌금형
기동민 의원 등 발의한 개정안
법안심사소위서 ‘처벌규정’ 삭제
비리기관 명단 공표 의무화만 남아

오제세 의원 “형평성 어긋나” 반대
같은 당 설득에도 뜻 굽히지 않아
문 대통령 지시에도 법안은 ‘후퇴’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나 요양보호사 숫자를 가짜로 등록해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급여를 가로챈 요양원·방문요양센터에 대한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국회 보건복지위가 처벌 강화의 핵심인 ‘형사처벌 규정’을 송두리째 삭제한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10명, 자유한국당 8명, 바른미래당 2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여당이 주도하기 유리한 구조임에도 민주당 4선 오제세 의원 반대로 민주당 발의안보다 후퇴한 개정안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 5월 <한겨레> 창간 기획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기사를 통해 장기요양기관 비리와 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한 처우가 드러나자, 문재인 대통령은 “회계와 감독, 처벌규정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문 대통령 “노인요양기관 감독 강화…구조 과감히 개선”) 그런데 청와대와 정부를 뒷받침해야 할 집권 여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셈이다.

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지난 2일 열린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비리기관 명단 공표 의무화’ 등의 내용만 담긴 노인장기요양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앞서 민주당 기동민·윤일규·신창현 의원은 비리기관 운영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현실을 고려해, 급여를 거짓·부당 청구할 경우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하는 규정을 뼈대로 한 법안을 잇달아 대표 발의한다. 그러나 법안심사소위 논의 과정에서 이러한 처벌규정이 빠졌다.

<한겨레>가 입수한 지난달 28일 법안심사소위 속기록 초안을 보면, 복지부와 보건복지위 수석전문위원은 ‘명백하게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급여를 청구한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을 물리는 법 조항(기동민 의원안)이 타당하다고 봤다. 현재는 극히 일부 기관(2015~2018년 39건)만 형법상 사기죄를 적용해 처벌하고, 수억 원을 빼돌려도 집행유예 정도를 선고받고 현업에 복귀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장기요양기관 회계 구조가 복잡하고 사기 금액도 상대적으로 적어 수사 기관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게 건보공단 설명이다. 또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서도 부정한 방법으로 비용을 청구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는 것을 고려하면 형사 처벌 조항이 무리한 것은 아니다.

2015~2018년 판결문에 드러난 요양기관 비리.
2015~2018년 판결문에 드러난 요양기관 비리.

그런데 오제세 의원은 건보공단으로부터 급여를 받는 병·의원은 형법상 사기죄로 규율하면서 장기요양기관만 다른 방식으로 처벌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입장을 대변했다. 오 의원은 “(장기요양기관 운영자분들은) 자신의 시설과 관리·용역을 제공하고 거기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를) 받는데 수가도 정부가 정해주므로 수입이 굉장히 제한된다”며 “국가가 할 일을 민간이 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을 범법자로 보아 (서비스를) 못 하겠다고 하면 누가 할 거냐?”는 발언을 이어갔다.

이에 대해 같은 당 김상희 의원은 “건강보험법에 부당청구 처벌규정이 없는 건 제대로 입법이 안된 문제”라며 “장기요양기관의 부정 청구에 대해 제재 수단 도입은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병·의원 등이 건강보험 급여를 부당청구할 경우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는 상태다. 김현숙 복지부 요양보험제도과장은 “(개설이 어려운) 병·의원과 달리 장기요양기관은 전화기 한 대만 있으면 설립이 가능하다. 업무정지·과태료 처분을 받아도 잠시 문을 닫았다가 활동을 재개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법안심사소위원장 기동민 의원은 처벌 조항을 놓고 공방이 길어지면서 법안 심사를 보류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형량과 벌금액을 낮추는 방안을 제안한다. 같은 당 의원들의 ‘받아들여 달라’고 해도 오 의원은 현행 방식 유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기 의원은 “20대 국회가 합의된 만큼 하는 것”이라며 처벌규정을 뺀 위원회안에 대해 동의를 구했고, 해당 법안이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 올라가 통과됐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조세와 다르지 않은 국민 돈(건보 가입자가 낸 보험료와 수급자 본인 부담금)과 국가 지원금을 재원으로 한 공공서비스”라며 “지금은 서비스 공급자가 너무 많아 ‘옥석’ 구분이 필요하다. 돌봄을 위해 애쓰는 기관을 위해서라도 부정수급에 대해서는 일벌백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 의원 반대로 발의안보다 후퇴한 채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 노인장기요양보호법 개정안 운명은 알 수 없다. 지금 법안 그대로 국회 본회의에 넘길지, 심사 과정을 거칠지 결정하는 건 법사위 몫이다. 계류 기간이 길어지면 20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될 수도 있다.

비리 기관에 대한 처벌 강화가 언제 가능할지 알 수 없게 됐으나, 구조 개혁을 위해선 신뢰할 만한 기관만 시장 진입이 가능하도록 지정요건 대폭 강화 등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지난 10년간 쌓인 건보공단 평가·행정처분 자료를 기반으로 비리·노인학대 등을 저질러 온 기관을 퇴출하는 구조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지금은 건보공단이 3년마다 진행하는 정기평가에서 최하위(E) 등급을 반복해 받아도 해당 기관을 퇴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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