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 1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마친 어머니 김미숙씨가 분향하기 위해 분향소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제약회사 협력업체인 한 소독회사에 일하는 김아무개씨는 홀로 클린룸 소독 일을 담당했다. 홀로 3개 층에 달하는 클린룸을 소독하고 나면 구역질 등 몸에 이상 반응이 찾아오곤 했다. 제약회사에서 쓰는 소독약은 독하기로 유명하다. 어느 날 청소를 마무리한 뒤 몸이 너무 무거워졌고 증상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힘들게 출근해 경비실 휴게실에 누워있는데 팀장이 “민폐 부리지 마라. 산재(산업재해) 타려고 그러는 거냐”고 힐난했다. 그 뒤로 상태가 더 안 좋아져 병원에 다녀왔더니 팀장은 괜찮냐고 묻기는커녕 “병원 왜 갔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김씨는 회사를 그만뒀다.
김씨만의 일이 아니다. 노동자 인권보호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7월1일부터 11월30일까지 5개월 동안 들어온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1248건 중에서 ‘직장에서 신체적·정신적 질병을 얻어 치료를 받았다’는 내용을 추렸더니, 모두 98건으로 전체 제보의 7.9%에 달했다. 신체적 질병이 31건(31.6%), 정신적 질병이 67건(68.4%)였으며, 산업재해 신청을 방해하거나 산재 휴가 뒤 불이익을 받았다는 응답도 24건(24.5%)이나 됐다. 직장갑질 119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오늘도 회사에 일하러 갔다가 신체적, 정신적 병을 얻어 병원에 다니고 있는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직장인들이 호소한 신체적 사례는 △일하다 눈이 나빠져 평생 진료와 투약해야 한다 △손목 통증 호소 무시당했는데 수술하자마자 출근 지시 등이 있었고, 정신적 질병 사례에는 △또라이 싸가지 등 매일 이어진 폭언으로 정신 치료 △불안 장애 휴직, 유급 병가 준다더니 무급 휴직 등이 있었다.
직장갑질 119는 ‘회사에서 얻은 질병은 산업재해를 신청해야 한다’며 “회사는 산재가 발생할 경우 근로감독 대상이 되고 보험료도 인상될 수 있어 자체적으로 병원비를 부담하는 공상처리를 선호하지만,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을 이용하는 공상처리는 엄밀히 말해 보험 사기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직장갑질119는 이어 한국을 “한 해 2400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노동 위험 국가’”고 규정하고.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대한 산재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 그 회사가 휘청일 정도로 책임을 묻고 원인을 제공한 최고경영자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는 ‘제대로 된 김용균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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