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서울 시내 편의점 점원이 판매 중단된 액상 전자담배를 수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케이티앤지(KT&G) ‘시드 토박’과 쥴랩스 ‘쥴팟 크리스프’ 등 국내에서 유통된 13개 액상형 전자담배에서 중증 폐 질환 유발 의심 성분 ‘비타민 이(E) 아세테이트’가 검출됐다. 케이티앤지의 시드툰드라를 비롯한 30여개 제품에선 인체 유해성을 이유로 영국에선 아예 사용이 금지된 가향 물질이 나왔다.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내에서 유통되는 153개 액상형 전자담배를 대상으로 유해성분 7종이 액상에 포함돼 있는지 여부를 살핀 결과, 일부 제품에서 비타민 이 아세테이트와 폐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고된 가향 물질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식약처가 국외 연구 사례 등을 종합해 인체 유해 가능성이 크다고 본 성분은 대마 유래 성분인 티에이치시(THC), 비타민 이 아세테이트, 가향 물질 3종(디아세틸·아세토인, 펜탄디온)과 모든 액상형 전자담배에 들어가는 용매 2종(프로필렌글리콜, 글리세린) 등이다.
중증 폐 질환을 일으킨 것으로 의심되는 성분 중 하나인 비타민 이 아세테이트는 13개 제품에서 0.1~8.4ppm 검출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미국 폐 질환 환자 생체시료 표본 29종 모두에서 비타민 이 아세테이트가 검출된 이후, 이를 유력한 폐 손상 의심물질로 보고 있다. 국내 유통 제품에서 검출된 비타민 이 아세테이트 농도는 미국 식품의약청(FDA) 검사 결과(23만~88만ppm)에 견줘 매우 적은 양이지만, 어느 정도의 농도가 위험한지 아닌지는 현재로썬 알 수 없다.
공중보건 전문가인 이성규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유해물질 용량이 작다 하더라도, 개인별 독성 반응과 사용 방법 등에 따라 피해 가능성은 달라진다”며 “액상에 유해물질이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는 상황에선 미량이든 다량이든 인체 유해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액상에 열을 가하면 화학반응이 일어나는데 그때 나오는 기체 물질은 액상 상태일 때와 매우 다르다”라며 “이번 식약처 연구는 액상에 들어있는 성분만 분석한 것이므로 실제 사람 몸에 들어가는 기체 물질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케이티앤지 시드툰드라에선 비타민 이 아세테이트가 검출되진 않았으나, 가향 물질인 디아세틸(1.7ppm)과 아세토인(38.1ppm) 이 검출됐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지난 5월 가향 물질 디아세틸과 아세토인을 폐 질환 가능 성분으로 분류했고, 영국은 지난 2016년부터 액상형 전자담배에 디아세틸과 펜탄디온 사용을 금지해 왔다. 가향 물질 3종이 모두 검출된 6개 제품은 연초 줄기·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이나 합성 니코틴을 사용해 현행 담배사업법상 담배로 규정되지 않은 ‘유사 담배’이다. 이런 제품엔 담뱃세가 붙지 않으며 경고 문구 및 성분 표기 등 규제도 적용할 수 없다.
액상 구성 성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프로필렌글리콜과 글리세린은 모든 제품에서 검출됐다. 두 성분은 동물실험 등을 통해 위해 가능성이 보고된 바 있으나 인체 유해성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추가 연구를 통해 인체 유해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현재 폐 질환 원인이 확정되지 않았고, 미국의 조처사항 등을 고려해 질병관리본부가 진행 중인 인체 유해성 연구가 발표될 때까지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강력한 사용중단’ 권고를 유지하기로 했다. 식약처는 액상 성분 분석에 이어 사람들이 실제로 흡입하는 기체 성분 배출물에 대해서도 유해성분 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폐 손상의 인과 관계가 규명되기 전까지 액상형 전자담배 특히 티에이치시 함유 제품의 사용을 자제하고, 액상형 전자담배에 비타민 이 아세테이트를 첨가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미국에서 논란이 컸던 티에이치시 성분은 국내 제품에선 검출되지 않았다.
한편, 케이티앤지는 “비타민 이 아세테이트를 원료로 사용하지 않았으며 자체 검사에서도 검출되지 않았다”며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겠으나, 현재로썬 판매·생산 중단을 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쥴랩스도 “비타민 이 아세테이트를 사용하지 않았다. 검사 결과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현정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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