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위부터 뚫어뻥, 화재감지기, 변기 연결부위, 전등, 휴지걸이, 나사못 등에 설치된 불법촬영용 초소형 카메라
‘휴지걸이, 화재감지기, 뚫어뻥, 변기 연결부, 전등, 천장, 나사못….’
상상하기 힘든 이런 장소에 불법촬영을 위한 초소형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과 경찰대학은 19일 ‘불법촬영 범죄탐지와 근절을 위한 학술세미나’에서 불법촬영용 초소형 카메라 설치 실태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초소형 카메라와 설치 장소들을 살펴보면 여성들이 끊임없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현아 경찰청 성폭력 대책계장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카메라 등 이용 촬영범죄는 2010년 1134건으로 전체 성폭력 범죄(2만375)건 가운데 약 5.6%를 차지했다. 하지만 2015년에는 7623건으로 전체의 24.9%까지 높아졌다. 이후 범죄는 다소 줄어들어 지난해 5925건, 18.9%를 기록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성폭력 범죄의 20%에 달하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경찰이 2017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발생한 카메라 등 이용 촬영범죄 1만5404건의 분석 결과를 보면, 범죄가 가장 자주 일어나는 시기는 여름인 7~8월이었다. 시간대는 하루 중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퇴근 시간대(오후 5시~7시)와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야간 시간대(저녁 8시~10시), 출근 시간대(오전 7시~9시) 순으로 나타났다. 범죄 발생 장소는 교통 시설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33.9%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다중이용장소(20.1%), 주거공간(15.6%) 순서였다. 불법촬영에는 휴대전화(86.7%)가 가장 많이 사용됐다. 최현아 계장은 “오는 25일 시행을 앞둔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은 여성에 대한 폭력 방지와 피해자 보호·지원에 관한 국가의 책임을 명백히 밝혔다”며 “경찰은 가해자에 대한 엄정 수사에 집중하여 불법촬영 범죄는 ‘반드시 검거되고 처벌된다’는 근절 의지를 지속 표명하고, 경찰대응 전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교육을 강화하며 불법촬영물 삭제·차단지원 등 피해자 보호체계를 더욱 공고히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불법촬영 등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하철 범죄 대응방안 발표를 맡은 이주락 경기대학교 교수는 범죄 감소를 위해서 주요 범행 발생 장소를 제대로 설계 및 관리하고 범행의 기회를 줄이는 등의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에스컬레이터를 완만하게 설치한다거나 계단 등에 병목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등 환경적 변화와 동시에 전동차 여성안전칸을 확대하거나 법 개정으로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피해자 보호 및 범죄자 처벌 대책 등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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