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7일간 100㎞를 도보행진한 끝에 29일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고공농성 중인 해고노동자 박문진씨를 만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7일간 100㎞를 도보행진한 끝에 29일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고공농성 중인 해고노동자 박문진씨를 만나 껴안고 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7일간 100㎞를 도보행진한 끝에 29일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고공농성 중인 해고노동자 박문진씨를 만나 손을 맞잡고 있다.
빨간색 패딩점퍼가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다.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할 때 입었던 패딩인데 엄청 따뜻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건넨 점퍼를 받아든 박문진(보건의료노조 전 지도위원)씨가 울먹였다. “그 몸으로 어디를 와.” 안쓰러운 듯 반가운 듯 김 지도위원을 거푸 껴안는 박씨에게 김 지도위원이 말했다. “집이나 좀 보여줘봐. 너 보려고 111㎞를 걸어왔어.” 29일 70m 높이의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해후한 오랜 벗들은 눈물을 훔치다 이내 웃음을 지었다.
꼭 7일 만이다. 1년여 전 암에 걸린 뒤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투병 중인 김 지도위원은 지난 23일 누구에게 알리지도 않고 부산을 출발했다. “내 오랜 친구 박문진이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176일째 매달려 있으니 앓는 것도 사치라 걸어서 박문진에게 갑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뒤였다. 2007년 간호사로 일하던 박씨를 해고한 영남대의료원은 창조컨설팅을 통한 ‘노조 파괴’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았다. 박씨는 명예회복 원직 복직을 주장하며 182일째 영남대의료원 본관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2011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부산 영도조선소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던 김 지도위원만큼 박씨의 외로움을 뼛속 깊이 이해하는 이가 없을 터였다.
8년이 지났어도 ‘김진숙의 용기’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았다. 아무도 뒤따르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김 지도위원의 행군에 점점 사람들이 붙기 시작했다. 영남대의료원으로의 행진 첫날 8명이었던 일행은 이틀 새 80명으로 불어났고 7일째인 이날은 200명이 됐다. 노동자의 땀을 의미하는 ‘소금꽃’ 행진단이다. 행진단과 함께 영남대의료원 입구에 들어서는 김 지도위원을 보고 박씨는 옥상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함께 도착한 이들 중엔 8년 전 한진중공업을 향했던 ‘희망버스’의 원년 멤버들도 있었다. ‘동행버스’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희망버스 시즌 투’는 김소연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 활동가를 비롯한 37명의 활동가·시민을 태우고 이날 서울에서 대구로 향했다. 동행버스를 기획한 김 활동가는 “김 지도위원이 대구에 도착하는 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27일 급하게 기획했다. 하루 만에 37명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우리도 놀랐다”며 “‘동행버스’라는 이름은 송경동 시인이 지었다. 김 지도위원과 동행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동행버스에 함께한 정영훈 한국여성연구소 소장은 “(두 위원의 포옹은) 비극적인 감동이다. 없었으면 좋았을 일이다”라며 “지난 희망버스 때 참석하지 못해 이번에 힘을 보태주기 위해 참석했다”고 말했다.
김 지도위원이 박씨를 만나고 옥상에서 내려온 뒤, 영남대의료원 앞에서는 문화제가 열렸다. 박씨는 전화 연결에서 김 지도위원을 향해 말했다. “당신이 준 이 위로와 우정, 반드시 승리의 꽃으로 피우겠습니다. 반드시 당신이 신은 운동화를 신고 산티아고 순례길도 걷겠습니다. 함께해준 동지들께 고맙습니다.” 문화제가 진행되는 두 시간 동안 70m 상공의 박씨는 휴대전화 손전등을 켠 채 땅 위의 동지들에게 응답했다. 밤이 깊어 김 지도위원이 그에게 입혀준 빨간색 패딩점퍼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손전등은 더욱 밝게 빛났다.
대구/글·사진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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