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송늬우스박물관 앞에서 김해곤 감독이 사진을 찍고 있다. 박임근 기자
“마을의 역사 등과 관련한 결과물을 내놓는 데, 주민 의견을 안 듣는 것은 가짜라고 생각했어요. 이곳이 예술적 승화를 통해 과거의 어두운 이미지를 벗고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이달 31일 문을 여는 전북 전주 노송늬우스박물관의 기획을 맡은 김해곤(55) 총괄감독의 말이다.
그는 과거 성매매집결지(선미촌)에서 문화예술촌으로 변신하고 있는 이곳 서노송예술촌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마을사박물관을 만들려고 노력했다.실천하는 미술문화운동을 내세우는 그는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시작한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총괄감독을 2017년까지 수행했다. 이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통해 약 120곳의 쇠락한 지역을 문화마을로 만들었다. 그는 2000년 강원도 광산촌에서 깃발전을 열기도 했다.
그에게 왜 성매매집결지를 택했냐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성매매집결지라는 공간이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와 좋은 작업을 기획하고 싶었어요. 저는 남들이 쉽게 접근하는 것은 안 합니다. 20년 전 탄광촌 사주와도 싸웠고 결국 광부의 삶을 화끈하게 보여주고 나왔죠. 시대의 암울한 측면을 건드리고 싶었어요. 그런 작업은 기획자라면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죠. 다양한 계층이 사는 공간인 선미촌에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전주시는 성매매집결지를 문화예술촌으로 바꾸는 도시재생사업을 2015년부터 추진했다. 이 사업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점진개발 방식을 택했다. 한꺼번에 성매매집결지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성매매업주들과의 협의를 토대로 마을을 문화예술촌으로 점차 변화시키는 방식이다. 천년고도 전주시는 이 사업과 병행해 ‘구도심 100만평 지붕 없는 미술관’ 사업을 진행한다. 한옥마을과 전라감영을 중심으로 전주시 완산구 옛 도심 일대 100만평을 ‘아시아 문화 심장 터’로 만들어 세계적 전통문화 관광지구로 육성하려는 것이다.
지난해 3월부터 김 감독이 용역을 맡았고, 권역별로 추진하는 가운데 마을사박물관은 첫 단위사업이다. 박물관이 들어서는 건물은 과거에는 성매매업소였다. 이 건물 1층에는 전주시가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추진하는 서노송예술촌 현장시청이 있다. 주소는 전주시 완산구 권삼득로 43(서노송동)이다.
시는 공공미술 전문가이자 전북 남원이 고향인 그에게 2018년부터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5번 고사 끝에 수락했단다.
전주 옛 성매매집결지 ‘선미촌’에
31일 문 여는 마을사박물관 기획
성매매 방 보존해 예술공간 꾸며
“시대 암울한 측면 짚는 데 흥미”
쇠락한 120곳 문화마을로 바꾼
공공미술 프로젝트 전문가
바로 사전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관광객이 많은 한옥마을에서 좀 떨어진 노송동 등 쇠퇴한 주변지대가 눈에 들어왔다. 환자가 있어야 의사라는 존재가 필요하듯, 시들시들한 지역을 살리는 데는 공공미술이 마지막 보루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재생과 창조의 가치 있는 작업을 위해 옛 도심 100만평을 대동여지도를 그리는 것처럼 각오를 다졌다.
지난해 9월 본격 작업에 나섰다. 조사원 3명이 주민들을 방문했다. 처음에 주민들은 냉소적이었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도시재생 관련자 등으로부터 과거에 일회용으로 이용만 당했던 경험이 있었음을 나중에 알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주민을 위해 김장을 도왔고, 할머니들에게 빨간 매니큐어를 발라주고 손톱도 손질해줬다. 막걸리를 사들고 경로당도 방문했다. 진정성을 느낀 주민들은 차츰 마음의 문을 열었다. 이야기보따리가 열려 인터뷰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주민들이 조사원을 기다리기까지 했고, 밥먹고 가라고 붙잡기도 하는 등 가족처럼 친해졌다.
작업하면서 고증할 자료 부족이 가장 아쉬웠다. 노송동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를 수 있는 전주역사 이전, 전주형무소(교도소) 이전 등 노송동 30대 뉴스를 찾으려 했다. 이제 70~80대 노인들이 돌아가시면 옛이야기가 돼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시급하다고 그는 말했다.
김해곤 감독이 지난 8일 전주시 대우빌딩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마을사박물관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성매매가 이뤄졌던 이곳 1층에 주민들 전시회가 가능한 갤러리, 소통과 문화체험 등이 가능한 사랑방 역할을 하도록 주민공간을 만들었다. 2층에는 방 13개로 꾸몄다. 과거 직접 성매매가 있었던 방을 고스란히 보존해 설치, 영상, 회화 등 5점의 예술창작작품을 각 방에 하나씩 전시했다. 과거의 아픔 치유와 재탄생에 대한 의지가 담겼다. 나머지 8개 방은 노송동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주는 내용물로 채웠다. 주민 110여명의 얼굴 사진, 주민들의 기증품, 인터뷰 영상자료, 노송동의 30대 뉴스 기록물 등이다.
박물관 취지에 공감한 주변 학교 어린이와 중학생들도 참여했다. 초등학생의 우리동네 이야기를 담은 그림 244점, 중학생들의 마을 희망메시지 160점이 예술적 작업을 통해 시각화한다.
그에게 박물관의 미래를 물었다. “제 역할은 박물관 조성까지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정착하려면 2년의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첫해는 주민들의 문화체험과 공부가 가능한 주민대학 운영 등이 있으면 좋겠고, 다음 해는 박물관을 통해 수익구조가 발생하면 좋겠습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