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8일 오전 경기도 사법연수원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 첫 정기회의가 열렸다. 각급법원에서 선출된 판사들이 대표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정치권에 영입 제안을 받거나 입당하는 전·현직 판사들을 소개하는 데 전국 판사 회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주요 수식어로 활용되면서,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대표회의)가 특정인의 정치자산으로 활용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법관대표회의는 최근 운영위원을 중심으로 법관대표회의가 특정 판사의 정치경력으로 활용되는 것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을 발표할지 검토했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법관대표회의가 정치자산으로 활용되는 점에 있어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전·현직 판사들의 잇따른 정치권행이 판결 공정성에 의심을 키우고, 나아가 사법제도 개선의 동력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로 풀이된다. 하지만 법관대표회의의 검토는 2월 법원 정기인사와 2월23일 법관대표들의 임기 만료 등 현실적인 여건 탓에 공식 의안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법관대표회의는 각급 법원 판사회의에서 선출된 판사들이 법관 독립과 사법행정 개혁을 위해 모여 토론하고 의결하는 대의기구다.
이런 우려는 정치권에서 영입한 전·현직 판사를 설명할 때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주요 이력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은 이탄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전 판사)를 ‘인재영입’하며 보도자료를 내어 이 변호사가 “법원 내 사법농단 은폐 세력에 맞서 전국법관대표회의 준비 모임을 조직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 안팎에선 이 변호사가 사법농단 의혹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맞지만, 법관대표회의를 조직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관대표회의 조직과 구성은 그해 4월 일련의 사태에 분노한 각급 법원 판사회의 대표자나 법원 진상조사위원회 후보자로 추천된 판사들이 처음 제안했기 때문이다.
여당 쪽의 영입 제안을 받고 지난 13일 법원을 퇴직한 최기상 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가 법관대표회의 전 의장으로 소개되는 것이 불편하다는 지적도 있다. 최 전 판사는 2018년 1년 임기의 의장을 지냈는데, 이 이력은 각종 언론에서 최 전 부장판사의 주요 경력으로 소개됐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최기상 전 의장(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이 지난해 3월 8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상황이 이렇다보니, 법관 대표를 지낸 현직 판사 또한 공개적으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2017년 인천지법 대표였던 이연진 판사는 22일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글을 올려 “법복을 들고 다니는 정치인의 모습, 법복을 들고 다니며 정치를 하려고 하는 모습은 법원과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송두리째 흔든다”며 “법관대표회의에 관계하거나 참여한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누군가의 법관 재직 시 주요 이력으로 표방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다. 정치 입문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양 부풀려진 외관이 참담하다”고 적었다. 지역의 한 법관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법관들이 어려울 때 뜻을 모아 유지해나가는 제도인데 몇몇 사례들로 법관대표회의라는 그 상징이 사유화되고 본질이 훼손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양승태 사법부 사법농단’ 관련 의혹을 폭로했던 이수진 전 수원지법 부장판사를 영입했다고 밝혔다. 이 전 부장판사는 김형연 법제처장과 김영식 청와대 법무비서관, 이탄희 전 판사에 이은 ‘사법농단’ 비판 판사로는 네번째 청와대 및 여권행이다. 고한솔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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