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한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은 이아무개(67)씨가 자신의 항소심 선고 기일 재판부를 마주하고 있다. 알츠하이머 환자인 이씨는 국내 최초로 치료적 사법을 적용 받아 병원 치료를 조건으로 징역형의 집행유예형을 선고 받았다. 법원 기자단.
아내 살해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치매 노인이 병원 치료 등을 전제로 2심에서 집행유예형으로 감형됐다. 국내에서 치매 환자에게 처벌이 아닌 실질적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치료적 사법’이 적용된 첫 판결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10일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아무개(67)씨가 치매 치료를 받고 있는 경기 고양의 한 병원에서 항소심 선고 기일을 열었다. 재판부는 법정이 아닌 피고인이 입원 중인 병원을 직접 찾았다. 병원 복도 끝에 있는 주간 정신건강센터는 ‘일일 법정’으로 바뀌어 재판부석과 검사석, 변호인석이 간이 책상으로 마련됐다. 휠체어를 타고 들어온 이씨는 1~2미터 짧은 거리를 두고 재판장을 마주했지만 초점을 잃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이씨는 ‘여기가 어디냐’는 아들의 질문에 “법원…”이라고 답하며 “현실에 수긍하겠다”는 짧은 한마디만 남겼다. 이씨의 아들과 병원장은 재판부에 이씨의 상태를 설명했고, 재판부는 검찰과 변호인 의견을 들은 뒤 선고를 했다.
재판부는 이씨에게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며 이씨의 주거지를 병원으로 한정하고, 집행유예 기간 보호관찰과 치료를 받도록 했다. 재판부는 “이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보다는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하면서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선언한 헌법과 조화를 이루는 결정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8년 전부터 치매를 앓은 이씨는 2018년 12월 아내를 때리고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는 이씨 쪽의 심신상실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는 구치소 수감 중 면회 온 딸에게 ‘엄마(사망한 아내)와 왜 동행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등 더욱 악화된 중증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인다. 검사는 치매환자 치료를 위한 감호 시설이 없어 치료감호청구를 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그런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치료를 진행하기 어려운 교정시설에서 징역형을 집행하는 것은 현재나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정당하다는 평가를 받기 어렵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선고를 한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장이기도 하다. 정 부장판사는 삼성에 준법감시위원회를 꾸리도록 하고, 이 부회장의 형량을 정하는데 이를 반영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빚고 있다.
고양/장예지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