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항소심에서 삼성 쪽에서 받은 뇌물 액수가 늘면서 형량도 2년 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쪽에 준 뇌물 액수가 두 배 이상 늘어 파기환송심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양형 판단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두 재판은 모두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가 맡았다.
형사1부는 지난 19일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소송 비용으로 삼성 쪽으로부터 받은 뇌물 등을 추가로 인정하면서 형량도 1심보다 2년 늘린 징역 17년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유죄로 인정한 뇌물액이 전체적으로 10억원 증가해 형량을 높이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2009년 이건희 회장의 특별사면이 삼성그룹 주요 현안이었다며 삼성 쪽의 ‘부정한 청탁’을 인정했다. 단순 뇌물죄와 달리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을 받았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하는데, 이는 1심에서는 판단되지 않았던 부분이기도 하다.
형사1부가 파기환송심을 맡은 이 부회장 사건도 상황이 비슷하다. 수수자(이명박-박근혜)는 다르나 뇌물 공여자는 삼성 총수 일가 쪽이다. 인정된 뇌물 액수는 36억원(2심)에서 86억원(3심)으로 크게 늘었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쪽에 준 말 3마리 등이 추가됐다. 그에 따라 횡령액도 늘어 이 전 대통령 사례처럼 형량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대법원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 관련 부정한 청탁과 함께 뇌물을 줬다고 보았다. 대통령의 강요에 의해 수동적으로 금원을 지급했다는 이 부회장 주장과는 다른 판단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 사건에 대한 형사1부의 태도는 이 전 대통령 사건과는 다르다.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해 삼성 쪽에 준법감시위원회 구성을 요구했고, 이를 이 부회장 형량을 정하는 데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대를 이어 최고권력자에게 뇌물을 주고, 뇌물·횡령액도 크게 늘었지만 오히려 감형을 하려는 듯한 움직임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특검은 이 전 대통령 사례를 비롯해 삼성 총수 일가가 전직 대통령들에게 뇌물을 제공해 특혜를 입었던 전력을 양형 판단에 참작해 달라는 의견을 냈다.
김종보 변호사는 “재판부의 태도는 일관적이어야 한다. 이 전 대통령 사건을 권력형 범죄로 엄정하게 판단했듯 이 부회장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이날 논평을 내어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이 범행을 부인하고 책임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가했다며 형량을 가중했다. 이 부회장도 뇌물 제공 및 횡령을 부인하고 박 전 대통령의 강요 탓으로 돌렸는데, 이런 태도는 양형에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